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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숙 칼럼] 부디 사랑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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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숙 칼럼] 부디 사랑하시라

입력
2009.12.30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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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아닌 이별은 드물지만 올해엔 유독 가슴 아픈 사별이 많았습니다. 설 직전 서울 용산 재개발 현장에서 숨진 여섯 사람을 비롯해 김수환 추기경, 김대중과 노무현 두 전 대통령, 히말라야 하산 길에 타계한 산악인 고미영, 2차 대한해협 횡단을 준비하다 숨진 '아시아의 물개'조오련, 폭행과 술자리와 성접대 요구를 이기지 못해 자살한 신인배우 장자연...

12월은 죽음의 그림자가 가장 짙게 드리우는 달입니다. 짧은 낮 여린 햇살 아래 종종 대는 사람들에게 원치 않는 나이가 한 살 더 다가오고 죽음도 꼭 그만큼 가까워집니다. 사람들은 죽음이 오기도 전에 죽음의 지배를 받고,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려 종교에 귀의하기도 합니다. 종교적 직분을 맡은 사람을 '성직자(聖職者)'라 부르는 건 그들의 역할이 세속 저편, 죽음 너머까지 포괄하기 때문일 겁니다.

기도회와 거짓말

그런데 하필 이달 들어 유명한 성직자 두 분이 음울한 세상을 더 우울하게 했습니다. 제자교회의 정삼지 목사는 교회자금 횡령혐의로 신도들에 의해 검찰에 고발당했고, 강남교회 김성광 목사는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구국기도회'에서 정도를 벗어난 정치적 발언을 하여 사람들의 많은 분노를 샀습니다. 기도회를 주최한 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개신교도 모임인 '성공21'서울협의회라고 합니다.

김 목사는 세종시와 4대강 사업에 대통령과 다른 견해를 보이는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을 '닭'과 '개'에 비유하며, 박 의원이 집을 지어봤냐, 시집을 가봤냐는 식의 인신공격 발언을 하고, 교회 집사인 정운찬 총리를 3년 안에 장로로 만들어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 장로가 대통령을 해야 한다고 하여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원래 국회도서관 대강당은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행사에 쓰이는 곳입니다.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이 기도회를 위해 대강당을 빌릴 때도 세미나를 할 거라고 했다고 합니다. 11월 20일자 '초청의 말씀'에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로 명시된 걸 보면 이 의원이 거짓말을 한 게 분명합니다. 독실한 개신교도로 알려진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후 목소리를 높이는 신도들이 많아졌습니다. 연말 곳곳에서 열리는 수상식장에선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소감이 흔하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어느 교회 다니세요?"하는 질문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성인 인구의 70% 이상이 기독교도로 자처하는 미국에서조차 보기 힘든 일이고, 세계 어느 나라보다 다양한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해온 한국에선 삼가야 할 일입니다. 믿음을 자랑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거짓말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라는 기본 계명을 지키는 일일 겁니다. 성직자의 임무는 계명을 지키는 데서 나아가 죽음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 사랑임을 보여준 예수의 존재를 신도들에게 일깨우는 것이겠지요.

수명이 연장되면서 두려움 속에서 보내는 생애는 길어지고'사랑'해야 할 시간은 늘어나는데, 종교적 직분을 가진 분들은'사랑'대신'성공'을 설파하는 일이 많습니다. 어쩜 그래서 요즘 '성직자'라는 표현이 덜 쓰이는지도 모릅니다.

신도들이 해야 할 일

12월 후에 13월 대신 1월이 오는 것은 지난 1년의 공과를 잊고 다시 시작하라는 의미일 겁니다. 새해가 올 때까지 48시간도 남지 않았습니다. 단 몇 시간이어도 좋으니 나라 안의 모든 성직자와 신도들이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천박한 정치 발언은 정치인에게, 들고 나는 돈 관리는 회계담당에게 맡기고, 죽음 속에 영원히 사는 길이 있음을 보인 예수의 뒤를 따르겠다고 염원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기도가 골방을 채우고 세상의 모든 약하고 가난한 이들의 동네로 흘러 들어 슬픈 이별은 있어도 억울한 죽음은 없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김흥숙 칼럼'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 드리며, 새해에 많은 기쁨과 보람 추수하시길 빕니다.

김흥숙 시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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