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를 하기는 할까 싶은 외진 동네 허름한 식당. 그런데 웬걸, 문을 열자 도사리고 있던 온기가 와락 안겨 든다. 방바닥도 쩔쩔 끓는다. 피가 다시 도는 듯 손끝 발끝이 저릿저릿, 몸이 먼저 그 환대에 감응한다. 언 입이 풀리자마자 터져 나오는 흥감스러운 감탄사들. 정신의 수작이 시작되기 전에 터져 나오는 몸의 말들…. 겁나게 추웠던 세밑 어느 날, 강원 홍천군 화촌면 구성포리.
그리고, 살얼음 앉은 동치미를 향한 분주한 젓가락질. 김치 그릇이 바닥을 보일 즈음 매콤한 양념장에 꼬신 참기름을 얹은 막국수가 탐스럽게 나왔고, 그 막국수 그릇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최기순(46) 감독이 입을 연다. "몸은 며칠 지나면 적응하는데 마음은 그게 안 돼요. 요놈의 기억을 눌러 앉히는 게 어찌나 힘든지…."
최 감독은 호랑이를 촬영하기 위해 시베리아를 드나드는 다큐 감독이다. 2010년 경인년(庚寅年) 호랑이 해를 며칠 앞두고, '바깥'의 마지막 인물로 그를 만났다.
영하 20~30도는 예사라는 시베리아의 한 귀퉁이에 터잡고 앉아 호랑이가 나타날 때까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돌처럼 기다려야 하는 촬영의 일상. 태곳적부터 한결같았을 것만 같은 겨울 툰드라의 풍경과 냄새와 소리에 낯선 것이 조금이라도 섞였다 싶으면 미련 없이 자신의 영역 한 토막을 떼어 줘버리고 얼씬도 안 한다는 호랑이다.
최 감독의 호랑이 촬영은, 그것이 정말 그의 말과 같다면, 스스로 생경한 극한자연의 일부가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첫 안간힘의 며칠 동안 몸은 그럭저럭 적응을 하는데 마음은, 동치미에 막국수 먹는 이 기억은, 밤낮없이 치밀어 안절부절 못하게 한다는 거였다…. 우리는 군말 없이 막국수만 먹었다.
맹수의 길목을 찾아 튼실한 나무 위에 바닥 치고 텐트 놓고 위장막 얹으면 촬영이 시작된다. 경비가 넉넉하면 촬영장비를 날라 주는 포터나 이동 경호요원도 고용하지만, 가난한 그는 대개 혼자다. 촬영 전 한동안은 비누도 안 쓴다. 옷과 신발도 현지의 풀잎 등과 섞어 밀봉해둬야 한다. 일단 자리를 잡으면 최소 열흘은 눌러앉아야 한다. "호랑이가 자는 낮에 버너를 켜고 세 끼 분 햇반을 익혀놔요. 반찬은 냄새 적고 부피 적은 장아찌와 콩자반을 한 끼 분량씩 포장해서 먹고요. 용변은 햇반 그릇에 봅니다. 봉지에 싸서 나뭇가지에 매달아두면 금세 얼죠."
때로는 땅 속도 그의 거처가 된다. 맹수의 눈높이, 혹은 그 아래에서 바라봐야 제대로 드러나는 위엄과 몸놀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땅이 녹은 여름에 참호 대여섯 개를 파둬야 한다. 당연히 천장은 철판과 나무로 가린다. "아무르 표범이 1미터 앞까지 접근한 적도 있어요. 녀석도 저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거죠. 그쯤 교감이 이뤄지면 어지간한 소음을 내도, 서로의 입김이 섞여도 도망치지 않아요. 물론 제 몸이 녀석의 공격권 안에 노출되면 끝장이지만요." 그는 첫 만남, 첫 인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맹수에게 인간은 손쉬운 먹잇감일 테지만 제 영역 안에서조차 피하려 드는 것은 인간의 몸에 밴 문명의 냄새, 자신들보다 더 난폭한 기운을 본능으로 감지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무리 제 존재를 가린다 한들 맹수의 본능을 끝내 속일 순 없을 것이다. 그래도 최대한 문명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자연에 대한 예(禮)의 한 형식이다. 그 예가 기특하게 여겨질 때 맹수는 모습을 드러낸다.
최 감독의 에토스 안에서 호랑이는 지금도, 전설에서처럼 신령인 듯했다. 그래서일까. 영국의 BBC나 미국의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명문 자연 다큐멘터리 영상팀이 담아내지 못하는 호랑이의 인문학이 최 감독의 영상에는 있다. 그들의 호랑이가 위기의 야생, 맹수의 아름다움이라는 범주 안을 거닌다면, 최 감독의 영상은 이어져온 유전해 온 전(前) 세대의 시선, 숭배의 뉘앙스를 거느린다. 그것이 영상 자체의 차이가 아니라 동북아 백두대간 자락의 영혼들에 깃들인 호랑이에 대한 관념 탓일지 모른다.
그가 방송카메라를 처음 든 건 20대 말이다. 첫 직장인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촬영 일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고, EBS에서 영상을 배웠다고 한다. 요컨대 카메라가 그를 선택한 것이다. "가곡도 찍고, 교과서 내용 각색한 드라마도 찍고…, 나름 재미있었어요." 실력이 붙으면서 각본 연출 공간에 갇힌 촬영이 조금씩 답답해졌을 것이다. 몇 년 뒤 그는 제일기획 뉴미디어팀으로 일터를 옮겼고, 6년 남짓 특집 다큐 전문 촬영감독으로 아마존, 남극, 파푸아뉴기니 등지를 돌면서 이런저런 상도 탄다. "첫 단추가 중요해요. 그쪽 일을 한 번 하니까 비슷한 일은 늘 저를 시키데요." 그는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1997년 그는 호랑이를 찍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EBS로 복귀한다. 복귀 7일 만에 장비를 챙겨 '맨땅에 헤딩하듯' 시베리아로 떠난다. "4월부터 터 잡고 앉았는데 낙엽 지고 첫눈 올 즈음인 10월 말에야 호랑이를 봤어요. 카메라 내던지고 그냥 지켜봤어요. 먼저 느끼고 싶었어요. 저게 진짜 호랑인가 싶더군요. 물론 그 뒤로도 녀석은 나타났고 촬영은 성공했어요. 한 번 온 놈은 또 오거든요." 그게 이듬해인 1998년 방영된 '시베리아의 야생호랑이'다.
시청자의 시선을 붙들기 위해 자연 다큐조차 기승전결의 매듭을 잘게 쪼개는 방송 콘텐츠의 불합리를 그는 비판했다. 또 보다 자유로운 작업 여건에 대한 갈망도 있었을 것이다. 2000년 그는 사표를 내고 강원 홍천의 지금 거처에 정착한다.
그가 숙소 겸 작업실 겸 사진전시관 겸 체험ㆍ휴식 공간으로 꾸며놓은 4,500여 평 공간. '최기순 감독의 까르돈(러시아어로 '산막'이라는 의미)'이다. 진입로를 따라 시베리아의 새하얀 자작나무가 줄지어 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10년째 가꿔 온 공간 곳곳을 안내하며 그가 들려준 말. "숲을 제대로 보려면 혼자서, 움직이지 않고 오래 멈춰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크고 작은 생명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요. 색의 변화, 바람의 변화, 소리의 변화를 느끼려면 스스로 고요해지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내년 4월 그는 불곰을 찍으러 캄차카반도로 떠난다. 온천이 있어 눈이 가장 먼저 녹고, 겨울잠 깬 배고픈 곰들이 가장 먼저 모여드는 곳이다. 그는 또 야생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돌처럼 기다릴 것이고, 그들이 들려줄 새 생명의 이야기, 몸의 말들을 영상에 담을 것이다. "호랑이 영화도 찍고, 곰 영화, 표범 영화도 찍을 생각입니다. 야생동물 촬영은 기술이나 끈기 못지않게 돈이 필요하거든요."
■ 연재를 끝내며
말보다 몸짓, 표정에 이끌리는 편이다. 언어의 전개보다 호흡에 담긴 침묵의 질감, 말의 몸통이 아니라 말려있는 꼬리의 양상에 주목한다. 거기서 얼핏 보이는, 말이 덧대거나 누락시킨 다른 층위의 진실을 나는 미쁘게 여긴다. 최근 읽은 다니엘 켈만의 소설 <나와 카민스키> 의 한 구절_ 진실은 오로지 분위기 속에만 존재하는 거야. 그려진 형태가 아니라 색채 속에. 정확하게 포착된 소실점은 진실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어_에 나는 주저 없이 밑줄을 그었다. 나와>
문학은 눌변으로 시작되는 것이라 했던 소설가 이인성의 지적에도 나는 공감한다. "눌변이란 침묵이 최선이라는 걸 알면서도 침묵할 수 없는 자들의 서투름이라고나 할까. 더듬거리는 꼴에도 결국 삶을 사랑하므로 침묵으로 초월하지 못한 자가, 또는 그런 초월을 거부한 자가 침묵하듯 말하는 방식…."(<식물성의 저항> 에서) 식물성의>
'바깥'에서 만난 이들의, 말과 세상살이의 어눌함이 나의 둔함을 감싸고 이끌어 이 연재가 이어져왔다. 그들을 찾고 또 만나러 다니면서 나는 꽤 오래 전부터 '꿈'이라는 단 하나의 단어를 만지작거리곤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켈트 신화의 후예들이 전해온 민요의 한 구절_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아주 멀리 있는 이들은 끝내 꿈꾸는 자일 수밖에 없어요_을 흥얼거리고 있다. '그들'의 꿈과 지금 '내'가 꾸는 꿈이 겹치는 공간, 우리의 이니스프리 섬이 하늘처럼 넓고 두툼했으면 좋겠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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