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합의한 국회 본회의가 오늘부터 사흘간 열린다. 그러나 본회의에 올릴 예정이던 내년도 예산안이나 노동법 개정안 등의 내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국회의 무능이 빚은 이상 현상으로, 뒤늦게 손질과 처리를 서두르더라도 물리적으로 부실 심의와 졸속 처리 부담은 이미 덜기 어렵다.
여러 차례 지적했듯 18대 국회의 두드러진 비능률은 1차적으로 제1 야당인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대통령 선거와 총선 참패로 드러난 국민의 변화 요구에 부응하려고 애쓰기보다 우선 존재 확인을 위한 투쟁형 구태 정치에 매달렸다. 소수당의 불안을 달래어 합리적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기는커녕 합당한 논의마저 힘으로 깔아뭉개려 했던 거대여당의 책임도 따라서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올해를 겨우 닷새 남긴 그제 김형오 국회의장이 밝힌 '입장'은 국회의 기능 부전이 여야 지도부의 정치력 부재뿐 아니라 국회의장의 엉성한 국회 운영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일깨웠다. 김 의장은 예산안 연내 처리 원칙을 강조하면서 끝내 실패할 경우 여야 지도부와 동반 사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입법부 수장으로서는 물론이고 5선 의원 경력에 비춰 일반적 기대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기국회가 헛되이 끝난 후 열린 임시국회의 파행이 그토록 길었지만 김 의장의 중재ㆍ 조정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라도 국회 부실의 책임을 일부라도 통감했다면 예산안 연내 처리라는 '최소 원칙'을 거론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연내 처리 원칙을 강조하기 위한 '자리 걸기'도 어정쩡하다. '의원직 사퇴'마저 진부한 정치 현실에서 6개월 남은 자리를 건다고 무슨 무게가 더해질까. 게다가 여야 지도부의 동반 사퇴를 들고 나와 완전히 뜬구름 잡는 소리가 돼 버렸다.
진지한 책임 의식이나 의지를 읽을 수 없다.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직권 상정' 카드를 꺼내 들고 적극적 중재에 나서던 때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입법부 수장은 결코 가벼운 자리가 아니다. 스스로 걸맞게 처신하지 않는 한 실질적 지위가 그저 높아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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