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쌓인 눈으로 진작에 집을 나선 남편도 아직 길 위에 있다고 했다. 큰애가 신종플루 의심 환자가 되면서 며칠 흩어져 있던 가족이 지하 주차장에서 십여 분의 짧은 재회를 하고 헤어진 뒤였다. 엄마와 헤어지지 않겠다고 우는 작은애를 달래려 차를 타고 지상으로 나왔다. 같이 갈 줄 알았던 엄마가 별안간 차에서 내리자 울고불고 아이는 발버둥을 쳤다.
그런 아이를 차에 두고 비정하게 뒤돌아설 때 차디찬 눈발이 얼굴에 들러붙었던가. 아무튼 그 눈발이 삼십여 분 만에 온세상을 하얗게 뒤덮을 줄은 미처 몰랐다. 기껏 2.5cm의 적설량에 교통 대란이 일어났다. 폭설 전담반이 있을까, 아마 그들이 쉬는 일요일이라 더했을는지도 모른다. 저녁 무렵 잠깐 장을 보러 나왔다. 어두컴컴하던 골목이 눈빛에 환하다. 수없이 팬 발자국들을 따라 걸었다. 누군가 미끄러진 듯 발자국 하나가 예상 못한 방향으로 삐쳤다.
마을버스도 한참 속도를 줄였다. 승객이 묻혀 들인 눈이 녹아 바닥에 물기가 흥건하고 물과 쇠 비린내가 진동했다. 늘 지나던 마포소방서 앞, 로터리 풍경이 여느때와 다르다. 지저분한 설치물들도 가려지고 먼 곳의 건물도 바짝 다가와 있다. 모든 경계가 사라졌다. 그 누구도 서둘 수 없었다. 세상이 고요하고 평화롭다는 생각은 딱 그때까지뿐, 작은애 또한 고열이 시작되었다는 전화가 왔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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