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자리가 없어 난리다. 돈이 있어도 못 본다. 상영시간도 비슷하다. 그러나 흥행성적은 극과 극이다. 상영방식도 단관 개봉과 대규모 동시 개봉이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3일과 17일 각각 개봉한 영화 '위대한 침묵'과 '아바타'. 다윗과 골리앗처럼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여겨질 두 작품은 믿기지 않게도 흥행이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가까이 할래야 가까이 할 수 없는 멀고 먼 두 영화가 각기 다른 방식의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숫자를 떼놓고 본다면 진정한 세밑 흥행의 제왕은 과연 누구일까.
돈이 있어도 못 본다?
'위대한 침묵'이 지금까지 모은 관객은 1만9,000명. '애걔'라는 경멸의 감탄사를 섣불리 내뱉기엔 경이로운 수치다. 238석의 씨네코드선재에서 채 한 달이 안 돼 거둔 성과이기 때문이다. 다른 영화와의 교차상영 등으로 하루 상영도 4회에 불과하다. 16~22일은 아예 하루 2회 상영했다. 그래서일까. 좌석은 꽉꽉 들어찼다. 좌석점유율은 90%대. 대형 멀티플렉스의 1년 평균 좌석점유율 25%는 비교도 안 된다.
인기에 비해 좌석이 모자라다 보니 예매가 밀렸다. 28일 현재 쌓인 예매만 3,000장이다. 씨네코드선재에서는, 당장 예매해도 1월은 돼야 영화를 볼 수 있다.
흥행 바람이 다른 극장까지 닿았다. 부산 우동 롯데시네마 센텀시티는 23일 상영을 시작했고, 30일부터는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도 관객을 만난다.
'아바타'의 흥행 기세는 파죽지세다. 관객 수만 놓고 보면 '위대한 침묵'을 간단히 압도한다. 27일까지 436만명이 찾았다. 올해 개봉한 영화 중 가장 빠른 흥행 속도다. 외화 사상 최고 성적을 거둔 '트랜스포머'(743만명)의 흥행 기록 경신도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아바타' 역시 돈이 있어도 못 보는 영화에 속한다. 아이맥스영화관과 3D영화관은 예매가 밀렸다. "'아바타'는 아이맥스로 봐야 제격"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아이맥스영화관은 관객이 밀물이다. 한강로 CGV용산의 아이맥스관은 1월 3일 밤 10시까지 매진돼 있다.
침묵과 아우성의 대결
'아바타'의 흥행은 예고된 것이었다. 2154년 외계 행성을 배경으로 한 사내의 영웅담과 사랑을 펼쳐내는 이 영화의 추정 제작비는 4억~5억 달러에 달한다. 할리우드 역대 최고다. 막대한 물량을 쏟아내 큰 화제를 낳았고,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최고의 흥행술사가 호객에 나섰다. 첨단 컴퓨터그래픽과 3D라는 화려한 포장지까지 둘렀다. 극장 개봉 스크린 수만 709개. 요란하게 흥행 군불을 지펴 뜨거운 관람 열풍을 만들어간,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는 대마불사형 영화다.
그에 반해 '위대한 침묵'의 흥행은 예상 밖이다. 수입사인 영화사 진진의 직원 대부분이 고개를 가로저었던 영화다. 프랑스 샤르트뢰즈 수도원의 사계를 담은 이 영화는 168분 동안 이렇다 할 대사도, 음악도 없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와 웅성거리는 목소리, 고즈넉한 발걸음 소리만이 고막을 자극한다. 요컨대 고요 속으로의 깊은 침잠을 권하는 영화다.
일종의 종교영화지만 종교 관계자와 신자들만 찾진 않는다. "아름다운 화면으로 첫 장면부터 관객을 압도한다" 등 호평이 인터넷에 이어지고 있다. 김난숙 진진 대표는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것에 대한 갈망이 있는 듯하다"며 "템플스테이를 하는 심정으로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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