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나 저제나 하며 마음 졸였는데 올해에도 어김없이 나타났네요."
28일 전주시 노송동사무소 직원들은 모두 감동의 환호성을 질렀다. 성탄절 전부터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기다렸던 '그 전화'와 함께 '얼굴없는 천사'가 다녀갔기 때문이다.
천사가 찾아온 건 이날 오전 11시55분께. 40대 남자로 짐작되는 그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동사무소 인근 세탁소 옆 공터에 돈을 놓았으니 가져가세요"라는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
성금을 전달한 시점과 방법, 전화 목소리 등으로 볼 때'바로 그 사람'이라고 직감한 동사무소 직원들은 동사무소 뒤편 공터 자판기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곳에는 돼지저금통 2개와 현금 뭉치가 담긴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금액은 돼지저금통에 들어있는 동전 26만여원과 5만원권 1,000장, 1만원권 3,000장 등 모두 8,026만5,920원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놓고 간 성금액 가운데 가장 많았던 지난해 2,038만원보다 4배나 많은 금액이었다.
이번엔 A4 용지에 적은 짤막한 메모도 들어 있었다. '대한민국 모든 어머님들이 그러셨듯이 저의 어머님께서도 안 쓰시고 아끼시며 모으신 돈이랍니다. 어머님의 유지를 받들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여졌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추신: 하늘에 계신 어머님께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은 2000년 시작됐다. 초등학생 소년이 지금은 노송동사무소로 통합된 중노송2동사무소를 찾아와 "어떤 아저씨가 전해주라고 했다"는 말을 남기고 돼지저금통을 올려놓았다.
그 안에는 동전과 지폐 58만원이 들어있었다. 그 후에도 동사무소 주변에 돈을 뒀으니 찾아가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렇게 10년째 11차례(2002년 5월과 12월 2회)에 걸쳐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씩 비슷한 방식으로 전달됐다. 이렇게 보낸 성금은 모두 1억6,136만원에 이른다.
그는 이번에도 자신을 전혀 드러내지 않아 그의 신원은 여전히 베일 속에 남게 됐다. 동사무소 직원들은 이번에 성금이 거액이고 편지에 '어머님의 유지를 받들어'라는 글귀가 있는 것으로 미뤄 돌아가신 어머니의 부의금을 기부한 것으로 추정했다.
한일수 노송동장은 "이곳이 구시가지라 소년소녀가장이나 독거노인이 많은 편"이라며 "이곳 사정을 잘 아시는 분의 선행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주시는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높이 1.2m 크기의 표지석을 만들어 내년 초 제막식을 갖고 노송동사무소 앞 도로 250m 구간을 '얼굴 없는 천사로(路)'로 부르기로 했다.
전주시는 그 동안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노동송 관내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 등 불우이웃 607세대에게 세대당 현금 10만~30만원씩 전달해왔다.
최수학 기자 s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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