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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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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스물

입력
2009.12.29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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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벌거벗고도 단추 채우는 방법을 알아요

숫자는 몰라도 시계는 스무 개가 넘어요

일요일엔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탔어요

이런, 풀밭에서 느릿느릿 사진이나 씹어먹을 작자 같으니

나는 자전거를 걷어찼고 자전거는 달렸어요

달리기는 자전거와 나의 슬픈 식사

우리는 삐뚤삐뚤 주위를 맴돌다

아무도 없는 그곳을 빠져나왔어요

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투명인간이 되는 법을 알아요

비가 올 때마다 젖지만 우산은 스무 개가 넘어요

오늘밤 달은 제 몸을 반이나 먹어치웠어요

달을 너무 오래 보면 미쳐버린다고 말해준 엄마

검은 옷장 속에서 지나온 계절들을 다림질하고 있겠죠

내가 내 몸을 반쯤 먹어치울 동안

문 열면 봄인 어느 저녁이 올 때까지

나는 나를 찌르고도 피 흘리지 않는 법을 알아요

어제도 시간은 하수구로 흘렀는데

햇살 아래 떠다니는 파도는 스무 개가 넘어요

● 얼마 전에 한국소설을 외국어로 번역하겠다는 분들과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어요. 그 중에 한 분이 소설을 쓰는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이냐고 물으시더군요. 자아실현… 이라고 대답하면 웃으실까봐 좋은 소설 한 편 쓰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런 거 말고 정말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이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죽기 전에 쓴 소설이 대표작이 됐으면 좋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런 거 말고 무슨 상 같은 것 받겠다거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겠다거나 그런 거 없느냐고 되물으시더군요. 제가 얼마나 비관적인데요. 인생은 한 번도 저를 속이지 않았지만, 전 인생을 믿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 것도 스무 살 때부터군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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