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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발전의 불연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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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발전의 불연속성

입력
2009.12.28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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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성격의 학회 개최와 학자들의 선의가 결부되어 큰 변화를 만드는 경우가 있다. 독일 통일 직후에 동ㆍ서독 수학자들이 국제수학자대회를 개최하고자 공동의 노력을 기울였는데, 1998년 분단의 상징 베를린에서 개최된 이 대회의 조직위원회는 동유럽 수학자 500명의 참가 경비를 제공했다. 이는 독일이라는 범주를 훨씬 넘는 파급효과를 낳았고, 유럽연합 차원의 동서유럽 교류지원 프로그램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유럽 각국의 수학자들은 유럽수학회라는 공동의 틀을 통해 많은 일을 하고, 유럽연합의 지원을 받아 개도국 수학자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 중 가장 부러운 것은 유럽수학상 수여다. 4년마다 35세 이하의 젊은 수학자 10명에게 수여하는 이 상은 세계적인 수학자의 데뷔통로가 되었다.

본인의 업적이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고 감사 받음을 확인한 젊은 학자들이 자신감을 갖고 더 큰 업적을 내는 효과도 있고, 수학계에 이름이 알려져서 강연 초청이 늘어나고 논문이 더 많이 인용되는 등의 상승효과도 있다. 그러니 이 중에서 훌륭한 학자가 배출될 수밖에 없는데, 국가단위의 상보다는 대륙 단위의 상이 노출 효과가 클 게 자명하다.

불행하게도 아시아에는 유럽수학회와 비슷한 기구가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유럽연합처럼 역내 교류협력을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연합체가 없다는 것이다. APEC정상회담 같은 게 있지만, 아시아 차원의 학회 개최나 참가를 지원하는 등의 활동은 전혀 없다. 경제교류가 중요하지만, 인적 교류와 학술 및 교육의 교류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게다가 선진국이 후발국에 대한 지원에 인색하니 상황은 더 안 좋다. 신흥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한국의 경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개도국 지원 확대를 강력히 촉구한 적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런 이유로 손을 놓고만 있을 수도 없다. 흰 호랑이의 해라는 2010년의 목전, 성탄절을 앞두고 한파가 몰아치던 시기에 외국인 300여명을 포함한 1,100명의 수학자들이 서울에 몰려들었다. 한국과 미국이 수학분야의 국가간 공동학술대회를 열었기 때문인데, 미국이 외국의 수학회와 개최한 가장 큰 공동학술대회의 기록을 가볍게 바꾸어 버렸다.

한국 수학자들이 개최했던 가장 큰 규모의 학회가 불과 3년 전에 500명 참가자 규모로 열렸었으니, 큰 진보는 불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주장의 사례일 수도 있겠다. 큰 학회 하나를 여는 게 무슨 큰 일일까만, 이를 통해 그 나라 학자들의 자신감이 표출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이룬 학문적 성취, 특히 젊은 학자들의 성장을 확인하는 것은, 다음 단계로의 도약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니까. 내재된 역량의 확인에서 오는 이런 자신감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치밀한 발전전략도 아무 짝에 쓸 모 없는 거니까.

이 한미 공동학회에는 특별한 손님들도 참가했다. 아시아 10개 국 수학회 회장들이 모여서 패널토론을 가진 것이다. '아시아 수학자들의 어려움과 도전'이라는 주제로 현 상황을 이해하고자 노력했고, 유럽수학회 성과의 벤치마킹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했다. 수학 박사학위자가 3명밖에 없는 캄보디아의 얘기를 들었고, 개인회원 연회비 징수는 꿈도 꿀 수 없다는 태국수학회장의 설명도 들었다.

한국의 성장에 대한 놀라움이 지속적으로 표현되었고, 참관한 프랭크 모간 미국수학회 부회장은 아시아 수학자들의 공동의 노력에 대한 감동적 보고서를 미국수학회장에게 제출했다. 또 다른 불연속 진보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박형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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