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지음 / 창비 발행ㆍ244쪽ㆍ1만원
첫 소설집 <코끼리> (2005) 에서 한국땅의 주변인인 이주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의 현장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탐색했던 김재영(43)씨. 그는 두번째 소설집 <폭식> 에서는 반대로 이국 땅에서 이방인이자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삶의 양태를 관찰한다. 노마드적 삶이 불가피한 세계화 시대에 경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정신적 공허와 불안감이 그의 작품들을 가로지른다. 폭식> 코끼리>
수록작 가운데 3편의 무대는 뉴욕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부이자 세계 각국의 이방인들이 집결한 다인종ㆍ다문화의 전통이 누적된 공간이다. 작가 김씨는 "그렇다면 그곳에서 한국인들의 삶은 행복한가?"라는 물음을 집요하게 던진다.
'M역의 나비'는 대학졸업 후 백수 생활을 하다 불치병에 걸린 이모의 간병차 뉴욕을 찾은 청년이 화자다. 이모의 삶은 아메리칸 드림의 그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불법체류자 검거에 나선 경찰을 피하기 위해 무단횡단하던 이모부는 차에 치여 세상을 떠났고, 이모가 하는 곰탕가게의 수입으로 치료비 마련은 언감생심이다.
미국 생활 10년에 이모는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기신기신 하루하루를 버티는 처지가 됐다. 화자와 반(半)동거하는 미란의 처지도 오십보 백보다. 디자인 공부하러 미국에 온 미란은 공부를 작파하고 누드모델로 전전하다가 돈 많은 백인 노인의 아이를 임신한다. 급기야 함께 한국으로 떠나자는 주인공의 제안에 미란은 "행운을 빌어. 날 비껴간 게 이미 네 행운이란 걸 곧 알게 될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진다.
아메리칸 드림의 이같은 씁쓸한 이면은 김씨의 뉴욕 3부작을 관통하는 중심 모티프다. 9ㆍ11 테러로 남편을 잃은 '앵초'의 여주인공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남편에 대한 추모행사도 열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인종적 장벽을 실감한다. 네일샵을 전전하는 그가 한국에서의 높은 학력과 대기업 근무 경력 따위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자신이 싸구려 불법체류 노동자에 불과하다고 독백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있는 한국땅 동남아 노동자의 고뇌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통일운동가 백기완씨의 며느리이기도 한 작가 김씨는 남편(백 일 울산과학대 교수)가 컬럼비아대 방문교수로 2007년 여름부터 1년 간 뉴욕에 체류할 때 동행해 이 소설들을 썼다고 한다. 그는 "내가 타자가 됐을 때, 내가 주변인이 됐을 때, 내가 이방인이 됐을 때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생각했다"며 "국경을 뛰어넘는 사고의 틀로 현실 문제를 해석하는 작업에 흥미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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