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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키워드로 본 2009년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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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키워드로 본 2009년 출판

입력
2009.12.28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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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은 한 사회의 거울이자 나침반이다. 책을 읽으며 현재를 살펴보고 미래를 내다본다. 2009년 한국일보 '책과 세상'이 리뷰한 책들도 한국과 지구촌의 자화상이었다. 올 한 해 '책과 세상'이 담아온 우리의 모습을 여섯 개의 키워드(가나다 순)로 되돌아본다.

건축, 욕망과 권력으로 지은… 상징으로서의 건축물

건축물의 미학적 가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축과 욕망, 건축과 권력의 관계 등을 다룬 교양 건축서들의 출간이 유난히 눈에 띈 한 해였다.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서윤영ㆍ궁리)는 권력과 욕망의 투영물로서 건축의 의미에 주목한다. 백화점은 욕망의 상징물로, 학교와 병원과 감옥은 감시와 훈육의 상징물로, 대기업 사옥이나 교회는 권력을 현시하는 건축물로 해독된다. <건축을 묻다> (서현ㆍ효형출판)는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까지 유럽사를 수놓은 건축가들을 일별했다.

<계단, 문명을 오르다> (임석재ㆍ휴머니스트) 는 쉽게 지나치기 쉬운 계단의 의미를 서양 문명사의 관점에서 풀이했다. 피라미드, 바벨탑 등 고대의 계단은 초월적 의미와 정치권력의 과시를, 실용적인 그리스ㆍ로마 시대의 계단은 신보다 인간을 우선시한 당대의 이념을 투영했다고 본다. <한국 교회 건축과 기독교 미술 탐사> (이정구ㆍ동연)는 영적 성찰보다는 대중이 선호하는 혼성모방적 서구양식으로 지어진 한국의 교회 건축물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본 건축 비평서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안도 다다오ㆍ안그라픽스)는 프로복서 출신으로 방랑, 독학을 거듭하다 뒤늦게 천재성을 인정받아 세계적 건축가가 된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자서전이다.

경제위기,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계속 믿어도 될까?

경제위기가 이어지면서 금융자본주의의 실체, 미국경제의 한계, 신자유주의의 본질 등을 다룬 책이 여럿 출판됐다.

<프리 런치> (데이비드 케이 존스턴ㆍ옥당)는 한쪽이 비용을 부담하고 다른 한쪽은 그 혜택을 얻는 것을 공짜 점심 즉 '프리 런치'에 비유하면서 누가 공짜 점심을 먹는지를 추적한다. 1%의 부자가 정부 정책을 주무르는 방식을 파헤치고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폭로한다.

<버블 경제학> (로버트 쉴러ㆍ랜덤하우스)은 지난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진 직후 미국서 출간된 책으로 서브프라임 사태를 촉발한 부동산 버블이 늘 더 큰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심리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데이비드 스믹ㆍ비즈니스맵)는 금융위기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는 데 주력한다. 세계 금융시장이 불확실성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불확실성의 요소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장기 20세기> (조반니 아라기ㆍ그린비)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 및 순환과정을 분석하며 20세기 초반부터 지금까지 미국이 세계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고 본 뒤, 미국의 주도력이 1970년대부터 최종적 위기를 맞고 있다고 주장한다.

혹독한 미국 자본주의를 고발한 잭 런던의 소설 <비포 아담> <버닝 데이라이트> <강철군화> (궁리)가 한꺼번에 번역된 것도 이런 경제 현실과 무관하지 않았다.

다윈, 탄생 200주년… 진화론·창조론 공존 모색

2009년은 다윈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였다. 다윈의 생애와 업적을 되돌아보거나, 진화론과 창조론 논쟁, 진화론으로 촉발된 진화생물학 이론을 다룬 저서들이 쏟아져 나왔다.

1,3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다윈 평전> (에이드리언 데스먼드 등ㆍ뿌리와이파리)은 진화론이 초래할 사회적 혼란에 대한 걱정으로 두통에 시달렸으나 자신의 이론을 포기하지 않았던 '고뇌하는 진화론자'로서 다윈의 모습을 그려낸 평전이다. 다양한 사진과 서신 등을 수록해 자료적 가치도 높다. <다윈 이후> (스티븐 제이 굴드ㆍ사이언스북스)는 생물학, 지질학, 물리학, 사회과학과 맞물리게 함으로써 결국 진화생물학의 토대를 마련한 다윈 진화론의 통섭적 측면에 주목했다.

<신의 언어> (프랜시스 콜린스ㆍ김영사)는 다윈 이후 촉발 된 종교와 과학의 대립 구도를 극복하자는 관점으로 쓰였다. 과학의 성과를 신의 섭리를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하며 과학과 종교의 양립 가능성을 타진한다. <자유는 진화한다> (대니얼 데닛ㆍ동녘사이언스)는 인간의 자유의지란 환상에 불과하다는 현대 과학의 관점을 거부하고 그것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자유의지 역시 유기체가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미리 디자인됐다는 독특한 논리를 전개한다. 다위니즘의 전도사로 불리는 리처드 도킨스는 <지상 최대의 쇼> (김영사)에서 한결 부드러워진 어조로 무신론의 교리를 옹호했다.

뒤집어보기, 우유가 몸에 나쁘다? 과학과 상식의 뒤집기

과학에서 음식까지, 우리가 가진 상식에 도전하는 책들이 올해도 꾸준히 나왔다.

<청부과학> (데이비드 마이클스ㆍ이마고)과 <닥터 골렘> (해리 콜린스ㆍ사이언스북스)은 과학을 맹신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청부과학> 은 담배와 같은 유해물질을 생산하거나 배출하는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연구한 과학 자료를 가지고 사람들을 호도한다고 주장한다. <닥터 골렘> 은 의료 행위의 본질을 잊어버린 채 밥그릇 싸움만 하는 현대 의학계의 실상을 보여줬다.

먹을거리 문제를 다룬 책은 올해도 많았다. <보틀마니아> (엘리자베스 로이트ㆍ사문난적)는 건강, 다이어트 열풍을 타고 전세계로 빠르게 확산된 생수의 실체를 파헤친다. 생수 소비가 마케팅의 힘을 업고 일종의 과시행위처럼 됐지만, 실은 성분 상 다른 물에 비해 우월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우유의 역습> (티에리 수카르ㆍ알마)은 완전식품으로 인식되던 우유가 오히려 골다공증을 악화시킨다고 주장하는 등 우유에 대한 과신을 경계한다. <빈곤한 만찬> (피에르 베일ㆍ궁리)은 '식물성 지방, 오메가3 등을 섭취하라' 같은 건강 정보를 떠받드는 현대인들에게 반대의 연구결과를 제시하면서 똑똑한 소비자가 되라고 주문한다.

재활용이 결코 미덕이 아니라는 <사라진 내일> (헤더 로저스ㆍ삼인), 통념을 뒤엎는 새로운 자녀 교육법을 제시하는 <양육 쇼크> (포 브론슨ㆍ물푸레) 등도 생활에 밀접한 소재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보여줬다.

미국, 부유한 나라 미국, 그 속 개인들은 행복할까

세계 최강국 미국이 금융위기로 흔들린 한 해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해 기대를 부풀게 했지만 한국의 출판계는 흑인 대통령을 배출한 미국의 역동성과 함께 이 나라가 안고 있는 복합적 문제에도 주목했다.

<나 홀로 볼링> (로버트 퍼트넘ㆍ페이퍼로드)은 정치적 냉소와 무관심, 공동체 의식의 붕괴 등이 초래한 미국 사회의 개인화, 파편화를 고발한다. 볼링을 여럿이 함께 즐기지 못하고 혼자서 하기에 이르렀다는 책 제목이 상징적이다.

<워킹 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 (데이비드 쉬플러ㆍ후마니타스)는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워킹 푸어의 실상을 통해 부유한 나라 미국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괴짜 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ㆍ김영사)이 담은 것은 미국의 빈민가다. 국가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소외된 삶을 사는 그곳 주민들에게 사회정책은 유명무실한 기만 술책일 뿐이다.

<사코와 반제티> (브루스 왓슨ㆍ삼천리)는 반공주의와 국가주의에 빠진 1920년대 미국의 비이성적인 사회상을 고발한다. 이탈리아에서 건너간 두 이민자 사코와 반제티는 미국판 마녀사냥 때문에 목숨을 잃고 만다.

<피와 천둥의 시대> (햄튼 사이즈ㆍ갈라파고스)는 백인이 서부 개척이라는 미명 하에 아메리카 인디언을 잔혹한 죽음으로 몰고 간 경위를 보여줌으로써 미국 사회의 혼란과 모순을 드러낸다.

서울, 바쁜 걸음들 뒤로… 서울 골목의 향기를 찾아

우리 문화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은 2009년에는 서울을 소재로 한 책들의 잇단 출간으로 이어졌다. 서울 전역에서 디자인 도시를 제창하며 부수고 다시 짓는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이 책들은 전통과 일상의 측면에서 세세하게 서울을 조명했다.

<서울, 북촌에서> (김유경ㆍ민음인)와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여자> (권진ㆍ씨네21)는 서울을 바라보는 내ㆍ외국인의 생생한 목소리를 살려 지은 책이다. 묵혀두었던 서울의 면면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전문성을 확보한 책도 다양했다. <서울풍경화첩> (임형남 등ㆍ사문난적)은 서울서 나고 자란 건축가 부부가 건축물을 중심으로 서울 곳곳을 글과 그림으로 엮은 것. 이들은 개발로 사라져가는 서울의 풍경을 고상하게 고발한다.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 (이현군ㆍ청어람미디어)는 고지도에 담긴 서울의 모습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천한 과정을 설명한다.

소설에서도 서울은 빠지지 않았다. 편혜영, 김애란 등 9명의 소설가는 서울을 공간적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을 묶어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 (강)를 냈다. 서울은 <나와 마릴린> (이지민ㆍ그책), <누란> (현기영ㆍ창비), <99>(김탁환 등ㆍ살림) 등의 소설에서도 한국전쟁 직후, 2002년 한일 월드컵, 현재로 시간을 옮겨오며 꾸준히 살아있는 무대로 그려졌다.

박광희기자

이왕구기자

김혜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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