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영 지음 / 자음과모음 발행ㆍ344쪽ㆍ1만1,000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대한민국은 부동산 공화국이야. 부동산이 투기라구? 누가 그래? 길 막고 물어봐, 부동산은 보험이라구, 아냐? 왜 망해? 부동산 떨어지면 대한민국 거덜나는데…"(330쪽).
김윤영(38)씨는 "소설은 밤 하늘의 별 같은 것이 아니라 매일 식탁에서 먹는 빵과 같은 것"이라는 소설론을 견지하는 작가다. 신과 인간, 존재의 의미 같이 거창하고 무거운 주제가 아니라 여성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세속적인 관심사를 자신의 소설적 영역으로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속물적이고 타산적인 21세기 청춘남녀의 사랑과 연애를 다루며 '낭만적 사랑'이라는 신화 깨기를 시도했던 소설집 <그린 핑거> (2008)는 그의 문학적 좌표가 어디쯤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린>
김씨가 이번에는 범속한 한국인들의 최대 관심사인 부동산 문제에 눈을 돌렸다. 신작 장편소설 <내집 마련의 여왕> 에서 그는 집, 부동산이라는 단어에 아로새겨진 한국인들의 욕망을 탐색한다. "나는 관념적 마인드가 부족한 작가다. 가벼운 터치로 진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었다"는 말처럼 그는 속도감 있는 필치로 '인간의 욕망'이라는 소설의 고전적 주제를 요리한다. 내집>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 그들에게 꼭 필요한 집을 구해주려는 괴짜 자산가 정 사장과, 보증 잘못 서 천신만고 끝에 마련한 집을 날릴 위기에 처한 삼류 소설가 송수빈이 소설의 한 축씩을 떠맡고 있다. 정 사장의 도움으로 자신의 집을 지켜낸 송수빈은 그로부터 미션을 부여받는데, 그것은 정해진 금액과 까다로운 조건에 맞춰 집을 구하는 일이다.
부동산에 대해 일자무식이었던 송수빈에게 정 사장의 지시는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4,000만원으로 서울 시내 아파트를 구해달라는 고아 청년형제의 요구를 들어주고 나니 갈수록 태산이다. 시골도 아니면서 경치도 좋고 사람들도 적당히 친절한 동네의 호숫가 집을 찾아달라는 치매 걸린 독신 노인이 나타나는 것. 그러나 법원에서 경매로 나온 집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과 몸싸움을 하고, 시체가 널브러진 빈 집을 찾아가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송수빈은 점차 부동산 전문가로 거듭난다. 미션이 하나하나 해결되면서 정 사장과 송수빈의 순탄치 않은 사연도 하나 둘씩 드러나며 소설적 흥미는 배가된다.
"단편소설 한 편을 쓰는 데도 취재노트 40~50권을 소모한다"는 김씨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다섯 살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서울은 물론 북쪽으로는 동두천에서 남쪽으로는 평택까지 200~300가구를 직접 방문해 취재했다고 한다. '20대에 내 집 마련하기' 같은 제목을 단 책에나 나올 법한 주택가치 평가법, 부동산 경매 시스템의 구조 등 소설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탄탄한 세부 묘사는 모두 작가의 발품 덕이다.
자수성가한 자산가인 정 사장이 자신의 전 재산을 서민을 위한 무담보 신용은행을 만드는 데 쓰라는 유언을 남긴 뒤 세상을 떠나고, 송수빈 역시 피땀 흘려 지킨 집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사하고 여행을 떠난다는 결말은 '개인의 욕망과 공공선은 대립적인 것은 아니다'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전한다.
없는 자들에게 끝까지 등 돌리고 심지어 그 등에 칼까지 꽂는 비정한 자본주의의 룰 안에서 인간에게 희망을 걸어보자는 작가 김씨의 전언은 자칫 순진한 이상주의자의 그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욕망의 늪 같은 세상에서 그런 이상주의야말로 세상을 세상답게 만드는 힘임을, '세속주의 소설가' 김윤영은 웅변하고 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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