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안철수 교수를 만났다. 본보가 연재하는'월요 인터뷰'(12월14일자 12면 참조)를 핑계 삼았지만 내심 그를 한번 만나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현재 직함은 카이스트 교수다.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직도 맡고 있다. 고교 시절 잠시 같은 학교를 다닌 적이 있으나 실제 만난 건 처음이다.
어렵사리 성사된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부드럽지만 확신에 찬 그에 대해 점점 끌렸다. 처음엔 성공신화를 달고 다니는 수많은 벤처기업가 중 한 명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성공 철학에 대해 얘기를 들으면서 그가 남다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성공의 구성 요건을 3가지로 요약했다. 일을 하는데 있어서 우선 재미를 느껴야 하고, 또 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했다. 의미, 재미, 재능을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의미'에 대해 곱씹으며 속칭 성공했다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가 됐다. 기업이나 정부조직 등 각계에서 성공했다는 인물들은 수두룩하다. 이들 중에도 즐겁게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그 일이 개인 혹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 지를 망각한 듯한 행동을 하는 이들을 자주 목격해 왔다. 그저 불법적으로 떼돈을 벌려 하는 기업인이나, 악다구니하며 세속적인 출세에 목을 매는 정치인 등의 부류를 보면 그렇다.
잘나가던 의사였던 그가 갑작스레 컴퓨터 백신 사업에 뛰어든 계기를 살펴보면서 그가 강조하는'의미'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듯했다. 젊은 시절 그는 의학자로서 목표가 뚜렷했다. 그럼에도 의사생활 틈틈이 컴퓨터 백신을 연구해 무료로 보급하는 일을 무려 7년간 했다. 하지만 당시 그의 생각은 자신보다 재능 있는 의사는 많았지만 컴퓨터 백신이나 보안 쪽의 일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특히 백신 쪽의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었다고 했다. 컴퓨터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려도 그것을 막아낼 백신이나 시스템이 부족한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는 의사의 길을 내던지고 아무도 가지 않은 외롭고 험난한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더 큰 의미를 찾기 위해서였을 테다.
그는 성공을'흔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했다. 돈을 많이 벌고 출세를 해서 대대손손 편하게 사는 것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바뀌고, 타인들의 삶의 궤적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는 효율과 성과만으로 성공을 판단해서는 안되고, 인생을 살면서'영혼이 있는 승부'를 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꿈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하는 당부였다.
한국일보 자매월간지 포춘코리아 신년특집호가 경제전문가 105명을 대상으로'21세기 국가경제 발전에 가장 큰 기여를 한 CEO'를 묻는 설문에서 안 교수가 이건희 전 삼성회장,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에 이어 4위에 올랐다. 벤처기업가인 그가 재계 랭킹 선두 그룹 오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그는 첫 직업도 의대 교수였고, 지금도 교수다. 하지만 그는 결코 이것이 마지막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변신이 궁금해진다.
조재우 산업부장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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