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책임편집ㆍ김강산 등 지음/생각의나무 발행ㆍ324쪽ㆍ1만5,000원
육당 최남선은 조선을 호담국(虎談國)이라 했다 한다. 중국의 문호 루쉰도 한국인을 만나면 으레 호랑이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청했다는 말도 있다. 호랑이 이야기가 그만큼 풍성하고 또 흥미진진하다는 사실을 거드는 사례일 것이다. 단군신화의 첫 머리를 장식하는 동물도 호랑이니, 이 땅에 사는 이들에게 호랑이는 예로부터 특별한 존재였던 듯하다.
한중일 3국의 공통된 문화유전자 코드를 읽는 '비교문화상징사전' 발간 사업을 추진중인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이사장 이어령)가 <십이지신 호랑이> 를 펴냈다. 쥐, 토끼 등 십이지 동물들이 세 나라에서 어떤 상징성을 갖고 일상의 문화 속에 반영되었는지를 살펴본다는 '십이지신 시리즈'를 기획했는데, 경인년을 새해를 앞두고 첫 주인공으로 호랑이를 택했다고 한다. 십이지신>
책에는 호랑이가 등장하는 3국의 민담, 설화, 전설, 실화 등이 풍성하게 담겨 있다. 그 가운데 호랑이를 잡은 사냥꾼에게 한 고을 사또가 곤장과 상금을 함께 내렸다는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현실의 호랑이는 인간을 잡아먹는 공포의 맹수이지만 상징계의 호랑이는 청룡, 주작, 현무와 나란히 앉는 사신(四神)으로, 또 부처나 신선을 호위하는 신령의 보좌역이거나 산신령의 화신으로 숭앙되곤 했다. 이처럼 '부정과 긍정의 모순을 안고 있는 양가물'인 호랑이를 잡은 사냥꾼에게 곤장의 형벌과 비단의 상금을 함께 내렸다는 것이다.
3국은 호랑이의 상징을 공유하지만 인문ㆍ지리적 차이에 따라 그 문화적 반영 양상이 조금씩 다르다. 가령 한국의 전통문화 속에서 호랑이는 무서운 존재라기보다 친숙한 존재에 가깝다고 한다. "조선시대 호랑이는 신령스러운 틀을 벗어나… 점잖은 인간의 얼굴이나 익살스러운 모습을 띠게 된다. 특히 조선시대 후기 민화에 그려진 호랑이는 어느 문화 속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점차 한국적이면서도 독창적인 해학과 익살, 재치를 물씬 풍기며 대중문화 속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호랑이 관련 전통예술의 기원인 중국 고대문명 속 호랑이는 힘과 기상, 성스러움의 상징으로 주로 등장하곤 했다. "명ㆍ청 시대로 내려갈수록 호랑이의 형상은 육중한 분위기, 여백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무겁고 후텁지근한 분위기, 틀에 짜여진 무표정한 모습 등의 특성을 찾아볼 수 있다."
반면 호랑이가 서식한 적이 없는 일본에서 호랑이는 상상의 성수(聖獸)로, 권력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활용되곤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구분은 경향적으로 그렇다는 의미이지 선명한 특징으로 부각시킬 수는 없다고 책의 필자들은 밝힌다. 가회민화박물관 윤열수 관장은 "삼국의 호랑이 문화는 독자적으로 성립하여 개별적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서로 교류하면서 융합되기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발전해왔다"고 적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김강산 사료조사위원 등 한중일 학자 15명이 호랑이의 생태와 이야기, 신화, 예술 등으로 분야를 나눠 썼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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