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김태준의 문향] <15> 길 위의 시인 이제현의 '길 위에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김태준의 문향] <15> 길 위의 시인 이제현의 '길 위에서'

입력
2009.12.28 00:36
0 0

고려 후기의 이름난 시인으로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1287~1367)은 이 시대 사람으로는 드물게 중원(中原) 땅을 헤매며 길 위서 산 사람이었다. 몽골이 원나라를 세워 유라시아 대륙까지 휩쓸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려는 28년이나 처절하게 항쟁하면서도 끝내는 98년간 몽골의 간섭 속에 수모를 겪었다.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려 26대 충선왕(忠宣王∙ 1275~1325∙재위1308~1313)은 그 어머니가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딸인 제국대장공주여서, 연경(燕京)에 머물게 되었고, 그의 부름으로 익재는 10년이나 중원 땅에 살았다.(지영재: <서정록을 찾아서> (푸른역사 발행) 참조)

익재가 충선왕을 따라 연경에 머문 것은 27살 때부터 10년 동안이고, 그는 8번 연행(燕行)에다 상왕(上王)이 유배된 티베트 땅까지 4만㎞가 넘는 여행에 <익재집(益齋集> 제1, 2권은 자연히 중원 땅 여행의 시로 채워졌다.

그 가운데서도 명승으로 아미산(蛾眉山) 길을 걸으며, 촉나라(사천성) 성도(成都) 여정을 끝내고 진나라(섬서성) 서안(西安)으로 들어서며 지은 '길 위에서(路上)'란 시는 특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말 위에 끄덕끄덕 촉도란을 읊으면서/ 다시금 오늘 아침 진관으로 들어갈 제/ 푸른 구름 저문 날에 어부수 막혀 있고/ 붉은 나무 아침 숲은 조서산이 여기라네/ 문자는 남아 있어 천고 한을 더하였고/ 명리에 지친 몸은 언제나 한가할고/ 나의 생각 잠긴 곳은 안화사 옛길에서/ 죽장망혜 짚고 신고 오가던 그 일뿐을(馬上行吟蜀道難 今朝始複入秦關 碧雲暮隔魚鳧水 紅樹秋連鳥鼠山 文字乘添千古恨 利名誰博一身閑 令人最憶安和路 竹杖芒鞋自往還)'(이가원 역 <국역 열하일기> )

'촉도란(蜀道難)'을 읊은 이태백의 여정을 걸으면서, 촉나라 길이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어렵다'는 싯귀를 떠올림은 당연한 용사(用事)일 터이다. 그러나 수 천리 남의 땅을 헤매는 시인은 금세 고국의 개성 송악산 자핫골로 달려, 죽장망혜 짚고 신고 오가던 안화사(安和寺)로 향수를 달랬다.

송나라 사절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 (1123)에는 개성에 절이 300개도 넘었다고 했지만, 지금은 관음사와 대흥사와 함께 안화사가 복원되어 있고, 안화사 길이라면 연암 박지원(朴趾源)이 머물던 연암(燕巖) 뒷산 기슭에서 한 재 마루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

연암은 안화사 옛터를 오르며 이 '길 위에서'라는 시를 노상 외고, '촉나라 길'을 생각했다고 썼다. 그리고 연행해서는 열하(熱河)의 피서산장(避暑山莊)에서 이 시를 다시 읊으며, 익재도 이르지 못한 열하를 걷는 기쁨을 자랑했다.(<열하일기> 중 '피서록')

익재는 연경에서는 충선왕의 만권당(萬卷堂) 서재를 중심으로 조맹부(趙孟頫) 등 원나라 명사들과 사귀었고, 운율의 속박에서 벗어난 장단구(長短句)와 국어시를 한시로 번역한 소악부(小樂府) 시를 창안한 시인으로 고려 한문학사의 외연을 크게 빛낸 문인이다.

동국대 명예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