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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백화점 '인사 올림픽' 금·은·동메달 주인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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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백화점 '인사 올림픽' 금·은·동메달 주인공은…

입력
2009.12.28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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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열리지 않는 홀수 해인 올 겨울, 그들은 올림픽을 치렀다. 경기장도, 정해진 경기시간도 없었다.

심사위원은 관중 행세(암행평가)를 했다.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낌새도 채지 못한 선수들은 평소 훈련모습(?)을 에누리없이 드러냈다. 심사위원단은 30년 역사를 지닌 250명의 베테랑(주부모니터)으로, 이중 엄선된 4명만 채점에 참여했다.

무려 5,400여 팀(팀당 2, 3명)중 210팀을 뽑아 14일간 지역예선(8개 점포 자체경쟁)을 치렀다. 본선에 오른 24개 팀이 다시 11월 24일부터 이달 8일까지 결전을 벌인 뒤에야 금 은 동메달리스트가 결정됐다.

우리가 아는 올림픽처럼 운동경기를 한 건 아니다. 종목은 생소하지만 '인사'다. 신세계백화점이 장장 한 달간 벌인 '인사 올림픽'에서 메달을 거머쥔 영예의 3인을 만났다. 적어도 신세계 내에선 "고객에게 무지하게 친절하고 인사를 가장 잘하는 인물들"이란 공인을 받은 셈이다.

먼저 면면을 소개한다. 금메달(점수 98.3점)은 올해 입사해 영등포점 지하1층 워터바에서 일하는 박소희(26)씨에게 돌아갔다. 은메달(96.4점)은 본점 본관 3층의 여성 명품의류 '소니아리켈' 샵마스터(보통 매니저라 부른다) 송수미(38ㆍ10년 차)씨, 동메달(95.4점)은 인천점 2층의 아동브랜드 '캔키즈' 샵마스터 원지연(40ㆍ13년 차)씨다. 첫인상, 웃음의 강도로는 셋의 메달 색깔을 구별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인사를 잘하나?

박: 꼭 고객의 눈을 보며(눈맞춤) 인사해요. 아니 눈이 마주치면 고객이든, 행인이든 눈웃음을 짓지요. 일부러 하는 게 아니라 사람 만나는 일이 즐겁거든요. 특별한 건 없는 데…

송: 첫인사보다 고객이 매장을 떠날 때 하는 마지막 인사에 더 공을 들여요. 물건을 사든 안 사든 들어올 때보다 더 반갑게 인사하죠. 인사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거든요.

원: 양해인사를 잘 하는 것 같아요. 바쁘다 보면 놓치지 쉽거든요. 손님이 몰리면 특정 고객에게 소홀해져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죄송합니다'라고 이해를 구해요.

심사는 크게 세 가지 인사에 집중됐다. 박씨는 첫인사, 원씨는 양해인사, 송씨는 마무리인사에 강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평소에도 친절하냐고 물었더니 셋 다 말끝을 흐리거나 그저 웃었다.

-특별한 비법이나 연습방법이 있나?

송: 저도 다른 매장에 가면 손님이잖아요. 고객이 오면 '아, 또 다른 내가 들어오는구나' 하고 자기최면을 걸어요. 고객이 바로 저(혹은 부모)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럼 물건 팔 욕심보다 푹 쉬다 가셨으면 하는 마음이 생겨요.

원: 시간만 나면 거울을 봅니다. 밝게 웃는 표정연습을 하는 거죠. 목소리 연습도 하구요.

박: 그냥 웃어요. 웃다 보면 스스로 즐겁고 저를 보는 고객도 즐거워하고(웃음).

-사사건건 시비 거는 불량고객도 있을 텐데.

박: 고객의 불만에 "네 맞아요. 저도 실은 이해가 안 가요" 식으로 바로 동의해버리고 웃어요.

송, 원: 오래 일하다 보면 불량고객 리스트 같은 게 있는데, 개의치 않고 똑같이 대해요. 거기에 휩쓸리면 다른 고객에게 여파가 미치거든요. 다만 안 되는 건 단호하게 끊고 원칙도 지킵니다.

-흔히 서비스업종을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라고 하는데, 웃다가 병든 적은 없나?

원: 감정노동 스트레스는 목적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 같아요. 우리를 '판순이'라고 비하하기도 하는데 저는 오히려 자부심을 느껴요. 브랜드를 알린다는 긍지도 있고, 열심히 하다 보니 샵마스터도 되고, 이렇게 상도 타잖아요. 그래도 정 힘들면 잠시 바깥바람을 쐬요.

박, 송: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 편이에요. 행복한 사람이 웃는 게 아니라 웃는 사람이 행복해 진다고 믿거든요. 또 돈 벌기 위해 웃음을 파는 건 아니거든요. 진심과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죠.

수많은 이들을 대하니 눈치도 예사롭지 않을 터. 정말 그들을 심사하는 모니터 요원들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셋 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올림픽조직위원장 격인 이진수 고객서비스담당 상무를 따로 만났다. "1979년부터 주부모니터를 활용하고 있다. 현재 250명인데, 경험과 실력이 대단하다. 그 중 4명을 뽑았다. 본선 진출 매장을 각 3회씩 방문하게 해 총 12회 평가했다.

사전에 평가 체크리스트 교육도 했다. 실제 고객으로 가장하기 때문에 절대 티가 안 난다. 하필 인사냐고 묻는데,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인사만이라도 제대로 해보자는 바람이다."

인사 올림픽은 순위가 금 은 동만 매겨질 뿐 그 이하 순위와 점수는 공개되지 않는다. 꾸짖는 게 아니라 일을 신나게 하자는 취지를 살리자는 것이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을 보고 구상한 대회란다.

인사깨나 한다는 사람들만 모인 곳이 백화점. 메달을 목에 걸긴 했지만 동료들이 맘에 걸린다. "운이 좋았던 거에요. 모두 열심히 인사하는 걸요. 더구나 함께 일하는 동료 선후배가 없다면 저희도 없었을 거에요." 무엇보다 올림픽은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다면서 또 웃는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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