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도 세태와 시대상을 반영한 말들이 쏟아졌다. 말들은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와 세종시 논란 같은 사건의 주변을 맴돌았다.
지난 9월3일 정운찬 당시 총리 내정자는 "세종시는 경제학자인 내 눈으로 볼 때 효율적인 모습은 아니다"며 "원점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원안대로 추진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해 세종시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에 대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정 총리께서 뭘 모르시는 것"이라고 말해 파란을 일으켰다.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 몸의 절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이라며 빈소에서 오열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영결식 조사에서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 정치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영전에 바쳤다.
불굴의 의지로 현대사의 질곡을 건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기에서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도저한 낙관론을 남겼다.
10월 재보선 불출마를 선언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아직 반성이 끝나지 않았다"며 "좀 더 깊이 고민하고 내가 나설 자리와 때를 생각해 보겠다"며 묘한 정국인식을 내비쳤다.
돌아온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은 9월30일 "이명박 대통령이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는데 도움이 된다면 나는 빗자루를 들고 마당 쓰는 일이라도 할 것"이라고 취임 각오를 밝혔다.
불확실한 경제 상황은 엇갈리는 진술을 낳기도 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7월27일 수도권 일부 지역의 부동산값 급등과 증시의 단기 상승 현상이 과열이 아니라며 "정상화 과정에 들어서는 단계로 본다"며 상황을 다독여야 했다. 그러나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은 12월11일 "내년 세계경제에 더블딥이 불가피하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스포츠 스타들도 멋진 말을 남겼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김인식 감독은 3월20일 준결승전에 앞서 "우리는 '위대한 도전'에 나서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PGA챔피언십을 제패한 양용은 선수는 8월17일 경기를 마치고 옷과 골프화를 모두 흰색으로 차려 입은 데 대한 질문에 "의상 콘셉트는 백의민족이었죠"라고 답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한마디의 유언으로 불황과 국론 분열로 지친 국민들에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위안을 주고 떠났다.
반면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경찰에서 "(내 얘기를) 책으로 출판해서 아들이 인세라도 받게 해야겠다"라고 말해 국민들을 또 한번 경악시켰다.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관련 판결은 야유와 조롱을 담은 '헌재놀이'를 유행시켰다. '절차상의 문제는 있지만 무효는 아니다'라는 판결문구는 '술 먹고 운전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커닝은 했지만 점수는 인정된다'는 식으로 변주됐다.
SBS 드라마에서 패션잡지 기자로 나온 탤런트 김혜수는 '엣지 있게'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영어단어인 'edge'에서 유래한 이 말은 한마디로 '스타일이 훌륭한'이라는 의미로 변주되며 유행을 탔다. 방송가와 인터넷에서 퍼지기 시작한 유행어는 이밖에도 '꿀벅지' '품절남녀' '올레' 등이 있었다.
11월9일 방송된'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한 여대생 패널은 "외모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에 키가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가 키 작은 남성 네티즌들의 공분을 사야 했다.
해외에서는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너스레가 절정에 달했다. 7월22일 섹스 스캔들과 관련된 녹음 테이프가 잇달아 공개되자 그는 "나는 성인(聖人)이 아니다. 그동안 섹스를 위해 돈을 지불한 적이 없다. 돈을 주면 무슨 재미냐?"고 '당당히' 말했다.
반면 올해 일본 총선에서 압승해 자민당 54년 장기집권 체제를 무너뜨린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10월26일 국회 소신표명에서 "내각이 추진하는 것은 '무혈의 헤세이(平成) 유신'"이라며 이례적인 개혁결의를 밝히기도 했다.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은 11월9일 "구글은 신문사 뉴스를 도둑질해 돈을 버는 기생충"이라며 인터넷 포털에 전면전을 선포했다.
성시영 기자 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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