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할아버지~, 산타 할아버지~."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오전 장애아동 전문 보육시설인 서울 양천구 신목해냄어린이집. 선생님들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있던 아이들은 산타 복장을 한 김정배(72), 김선명(72)씨 부부가 선물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나타나자 환호성을 질렀다.
몸이 불편한 아이들은 휠체어에 앉아서도 목을 쭉 빼고 이들을 맞았다. 아이들은 수염이 없는 '산타 할머니'가 신기한 듯 손을 내밀었고, 할머니가 손을 잡아주자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김씨 부부는 올해로 3년째 산타 봉사를 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가 공동 주관해 매년 열고 있는 '희망산타' 행사를 통해서다. 이들 부부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산타로 변신했지만 오히려 우리가 더 큰 희망을 얻는다"고 말했다.
성탄절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각양각색의 산타들이 활약하고 있다. 부부 산타 뿐 아니라 여든 셋의 최고령 산타, 썰매 대신 택시를 탄 산타도 등장했다.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고자 하는 산타의 마음은 같았다.
김씨 부부의 산타 봉사는 의외로 남편 김씨의 건강이 악화한 것이 계기가 됐다. 35년간 교직생활을 한 김씨는 은퇴 후 지병인 당뇨가 심해지고 대장암과 천식까지 걸렸다. 부인 김씨는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보면 힘이 난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힘을 주기 위해 봉사활동을 제안했다.
그 중 하나가 산타 봉사였다. 이들은 2007년 노인들을 위한 '희망산타' 학교에 참여해 산타 분장법과 마술, 풍선아트 등을 배운 뒤 매년 성탄절이 다가오면 부부 산타로 변신해 활동한다. 올해는 지난 16일부터 이날까지 7곳의 어린이집을 찾아 선물을 전했다.
'희망산타'에 참여한 최고령 산타 박병용(83)씨도 이날 오전 서울 방배동 세화어린이집을 찾았다. 아이들은 산타 할아버지의 마술에 넋을 잃고 선물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는 '희망산타' 행사 첫 해인 2006년 우연히 산타 봉사를 할 노인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망설임 없이 참가했다. 아이들을 워낙 좋아해 평소에도 설과 추석 등에 지역 어린이집을 찾아 우리 전통과 역사를 소개하는 봉사를 해왔던 터다.
처음에는 박씨의 건강을 염려하던 부인은 이제 열렬한 지지자가 돼 "힘 있을 때까지 계속 하라"고 응원한다. 그는 친구들에게 함께 하자고 권하지만, 대부분은 "이 나이에 빨간 옷 입고 남의 앞에 서서 재롱 떠는 건 도저히 못하겠다"며 손사래를 친다고 한다.
박씨는 앞으로 5년 정도 더 산타 봉사를 할 작정이다.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산타 할아버지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면 내년을 기약하게 된다. "아이들을 보면 피곤이 싹 풀려요. 천진한 얼굴로 내년에도 또 올 거냐고 묻는데 안 온다고 할 수야 없지요."
23일 오후 서울 강서구에서는 15대의 '산타 택시'가 등장했다. 택시기사들로 구성돼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위해 8년째 봉사를 하고 있는 '강서 까치자원봉사대'가 산타 봉사에 나선 것.
지역 지리에 밝은 이들은 강서교육청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을 위해 마련한 성탄절 선물을 대신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들은 1시간 동안 산타 교육을 받고 흰수염까지 제대로 갖춰 산타 분장을 한 뒤 집집마다 방문해 케이크와 문화상품권을 전달했다.
성탄절인 25일에는 대학생과 직장인 8명이 전남 완도군 생일면 유서리 섬마을을 찾는다. 2004년부터 이어온 '섬마을 아이들 꿈 지원하기' 행사의 하나로, 20여명의 섬마을 아이들 집을 찾아 선물을 놓아두고 떡을 돌릴 예정이다. 고려대 사회봉사단 소속 20명도 이날 오후 몰래 산타로 분장해 학교 근처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성탄절 선물을 전달한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