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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잉카문명 이야기] <3> 마추픽추에서 잉카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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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잉카문명 이야기] <3> 마추픽추에서 잉카를 보다

입력
2009.12.24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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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닿아있는 것과 같다고 하여 '하늘도시', 또는 공중에 떠있다고 하여 '공중도시'로 불리는 마추픽추는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에서 100㎞ 정도 떨어져 있다. 쿠스코에서 버스로 출발해 우람밤바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1시간여를 달려서야 마추픽추역에 닿을 수 있었다. 마추픽추의 미스터리를 푸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마추픽추 문화재청장과 마추픽추 박물관장이 마중나와 있었다. 그들의 안내로 다시 버스를 타고 속리산처럼 지그재그로 난 산길을 올라 마추픽추 유적으로 향했다.

쿠스코에서 이미 숨이 가쁘고 어지러운 고산병 증세로 고생을 한 바 있어 하늘도시라는 마추픽추에서는 얼마나 더 심할까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뜻밖에 전혀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마추픽추 문화재청장은 "일반적으로 마추픽추가 훨씬 높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마추픽추는 해발 2,800m로 해발 3,400m인 쿠스코보다 600m 정도 낮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마추픽추의 위용은 세계의 7대 불가사의답게 가히 천산만학(千山萬壑)에 온 것 같은 신비스러운 느낌이었다.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스페인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선지 마추픽추 유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마추픽추는 1911년 미국인 고고학자 하이렘 빙엄에 의해 발견될 때까지 400년간이나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원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마추픽추는 늙은 봉우리라는 의미다. 맞은편에는 젊은 봉우리란 의미의 와이나픽추가 떡 버티고 있으며, 그 사이 능선에 마추픽추 유적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도시의 중앙에는 성곽이 배열되어 있으며, 산의 사면에 연하여 관개시설이 정비된 밭이 보인다. 밭은 계단식으로 층층이 이루어져 있는데 마치 고려, 조선 시대 때 군대의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국경 산악 지방에 조성한 둔전(屯田)과 같은 모습이었다.

마추픽추 문화재청장은 마추픽추의 기능을 놓고 잉카 최후의 저항지, 신성한 신전, 잉카왕 친족의 거주지 등 여러가지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건물의 성격과 출토된 유물 등을 근거로 거주지인 동시에 종교적 의례가 이루어진 곳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고 한다. 최근의 조사에서 잉카의 8개 지역에서 마추픽추를 향해 나있는 8개의 길이 확인되면서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마추픽추는 이 사통팔달의 '잉카로드'를 통하여 아마존지역을 포함한 잉카의 4개 제국을 연결하는 정치와 종교의 기능을 수행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추픽추는 잉카의 귀족, 사제들에게만 허락된 성역으로 여겨진다. '포소세코'라 불리는 배수로를 따라 크게 두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유적의 북쪽은 종교와 의례 시설 및 주거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쪽에는 층층이 조성한 계단식 밭인 '안데네스'가 배치돼있다. 북쪽의 주거지역은 다시 서쪽의 '아난'과 동쪽의 '우린'으로 나뉘어진다. 아난 구역은 왕궁, 탑, 신전 등 조형성이 뛰어난 종교적인 건축물로 구성돼있는 반면, 우린 지역의 대부분은 대중들을 위한 주거와 작업 공간이 차지하고 있다.

유적의 정상에는 태양을 묶는 기둥이라는 뜻을 가진 돌기둥인 '인티와나타'가 있다. 높이1.8m, 너비 36㎝의 이 돌기둥은 태양을 숭배했던 잉카인들이 매년 동지에 지냈던 의례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 돌기둥 바로 위에 뜬 태양을 붙잡아 둔다는 의미로 돌기둥에 끈을 매는 의례를 지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해시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외에 태양의 신전, 달의 신전, 왕의 무덤이 있는 콘도르신전 등도 있다. 모두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여 연결한 다면체의 석조 건축물들이다.

그런데 고도로 발달된 잉카의 건축 기술이 이루어낸 마추픽추는 16세기 후반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잉카인들에게 갑자기 버려지고 만다. 이것이 스페인 군대의 침략에 의해서인지, 아니면 자연적으로 사라진 것인지에 대한 미스터리는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이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단서들은 여기서 출토된 유물들일 것이다. 이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마추픽추 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태양의 아들, 잉카'전에 수술 흔적이 있는 두개골과 항아리 등을 대여했다. 마추픽추의 유물들이 해외로 나온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태양의 아들, 잉카'전에서 마추픽추의 전경을 담은 영상물과 출토 유물을 함께 보며 마추픽추의 신비를 풀어보는 상상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 마추픽추가 경배한 신은?

마추픽추 유적을 놓고 여러가지 견해가 엇갈리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대체로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공간으로 알려져왔다. 그런데 최근 태양신이 아닌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곳이라는 견해가 새로이 대두되었다. 산의 모양새를 본떠 돌로 만든 미니어처를 갖춘 산신 숭배의 공간들이 근거다.

그러나 현지를 둘러본 결과 마추픽추는 역시 태양신에 대한 경배를 위한 공간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산신을 위한 제의 공간은 태양신 경배의 부수적인 부분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유적의 중심부에 태양의 빛이 들어오는 것을 측정하기 위한 시설과 빛의 그림자를 측정하는 시설들을 배치했다. 또 태양을 측정하고 제의를 진행하는 공간은 하나인 반면 산신을 위한 공간은 동서남북 네 곳에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이곳의 산 모양 미니어처들이 바로 앞에 보이는 산들이 아니라 뒤편이나 측면의 산들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니어처 앞에는 돌을 평평하게 다듬어 놓았는데, 이는 사실상 산신을 위한 공간들이 산을 숭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산에 햇빛이 비추는 그림자를 측정하기 위한 공간임을 보여준다. 즉 동서남북 네 곳에 설치된 산 형상 미니어처들은 햇빛이 뒷산이나 옆산을 어떻게 비추는가를 관찰하기 위한 일종의 해시계인 것이다.

잉카가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음에도 이런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은 내가 한국 고대 제사 의례 전공자이기 때문이다. 잉카제국은 네 개 지방 세력의 연맹체다. 따라서 동서남북의 네 공간은 지역 세력들을 상징하며, 각 지역에 햇빛이 어떻게 비추는지를 관찰하고 시간을 측정하기 위한 시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한국의 동서남북 4방 관념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신라의 삼산오악(三山五岳)에서 삼산이 왕경의 방호세력, 오악이 전국의 세력을 동서남북으로 상징적으로 방호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정치의 중심지로 국읍인 쿠스코와 달리, 마추픽추는 종교와 제의를 담당하던 종교적 중심지로 별읍인 소도와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태양신을 향한 제사를 지냄으로써 태양의 아들이라는 존엄성과 지역 세력과의 차별성을 과시하고, 지역 세력에 햇빛이 어떻게 비추는지를 관찰해 시간을 통제하려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각 지역 세력들이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리거나 경제적 협상을 할 때 마추픽추에 모여 태양신에 대한 공동 제의를 지내고 중요한 사안을 결정했을 것이다. 신라에서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대신들이 모여 회의를 했던 사영지(四靈地)와도 비슷한 역할을 한 셈이다.

국립중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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