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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호랑가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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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호랑가시나무

입력
2009.12.23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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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보낸 성탄축하 카드에 호랑가시나무 녹색잎과 빨간 열매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연말 거리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듣기 힘든 요즘이지만 성탄카드의 호랑가시나무 그림은 연말연시의 설렘과 희망을 여전하게 전한다. 호랑가시나무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수난의 상징이다. 가장자리의 가시는 그리스도의 머리에 씌워졌던 가시 면류관을 뜻하고, 새빨간 열매는 이마에 방울방울 맺힌 피를 상징한다. 크리스마스 카드나 장식에 호랑가시나무 그림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다. 나눔과 이웃사랑을 뜻하는 '사랑의 열매'도 호랑가시나무의 빨간 열매에서 유래했다.

▦ 호랑가시나무는 감탕나무과에 속하는 상록활엽관목. 보통 크리스마스 카드에서나 보는 탓에 외국 수종이라고 여기기 쉬우나 남부 해안지방에 흔한 나무다. 윤기 나고 빳빳한 잎은 6각형 방패모양이고 가장자리 꼭지점마다 가시가 있다. 전세계에 120여종이 분포하는데, 원예종까지 합하면 500여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 호랑가시나무는 외국종보다 잎이 크고 예쁘며, 나무 모양도 아름다워 조경수나 꽃꽂이용으로 사랑을 받는다. 전북 변산반도가 자생 북한계선이나 태안의 천리포 수목원에는 국내 자생종과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호랑가시가 자라고 있다.

▦ 호랑가시라는 이름은 날카로운 가시가 마치 호랑이 발톱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호랑이도 무서워할 만큼 가시가 단단하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전북 지역에서는 호랑이가 등이 가려울 때 여기에 등을 대고 긁는다고 해서 '호랑이 등긁개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호랑가시나무의 영어명은 할리우드(holly wood). 미국 영화의 중심가인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도 이 나무에서 따온 지명이다. 1887년 호레이스 윌콕스라는 사람이 이곳을 토지분양지로 구획하면서 할리우드 랜드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 새해가 경인년 호랑이 해여서인지 올 연말엔 호랑가시나무가 한층 각별하게 다가온다. 전라도지역에서는 호랑가시나무가 나쁜 귀신과 기운을 쫓는 데도 쓰였다. 음력 2월4일 영등날 호랑가시나무 가지에 정어리 머리를 꿰서 처마에 매달아 놓아 나쁜 귀신을 물리치는 민속이었다. 전북 부안에는 천연기물 122호로 지정된 호랑가시나무 군락이 있고 남해안과 제주에도 자생 군락지가 많다. 번잡하기 쉬운 연말연시 남쪽으로 여행을 떠나 눈 시리게 아름다운 호랑가시나무를 즐겨 보는 것도 좋겠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이웃사랑도 함께 생각하면서.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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