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만의 역사적인 정권 교체를 달성한 일본 하토야마(鳩山) 정부가 24일로 출범 100일을 맞는다.
8월 총선과 9월 출범 직후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는 하지만 3개월이 지나면서 점점 회의로 바뀌어 가는 분위기다.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 문제를 조기에 매듭짓지 못하는 총리의 지도력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 재정 부족을 메우기 위해 민주당의 대표 공약을 수정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게다가 민주당 실세 오자와(小澤) 간사장의 입김이 갈수록 커지면서 하토야마 조기 하야설이 입에서 입을 타고 번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아사히(朝日)신문이 19, 2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하토야마 내각 지지율은 48%로 전달 62%에 비해 무려 14%포인트 떨어졌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이 같은 기간 실시한 조사에서도 내각 지지율은 55%로 한달 전보다 9%포인트 하락했다. 앞서 요미우리(讀賣)신문의 내각지지율 조사는 55%, 지지(時事)통신은 46.8%로 한결 같이 급락세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가장 큰 요인은 총리의 리더십 부재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현안이 오키나와(沖繩) 후텐마 미군비행장 이전 문제다. 하토야마 총리는 기존 합의 이행을 고집하는 미국에 합의 수정 방침을 밝히고 이해를 구하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21일 이례적으로 주미 일본대사를 불러 합의 번복이 미일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하는 등 갈등 해소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아사히 조사에서는 '총리가 리더십을 발휘할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는 응답이 74%에 달했다. 마이니치 조사에서는 정부의 대미 외교를 '걱정한다'는 응답이 68%를 차지했다.
급기야 대표 공약으로 내세우며 폐지키로 했던 휘발유 잠정세율을 세수 확보를 이유로 이름만 없애 현재의 세율과 같은 수준의 새로운 세제를 도입, 사실상 유지하는 공약 수정 결정까지 나왔다. 자민당은 즉각 "공약 사기"라고 비난을 퍼부어 대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총선 4개월전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민주당 대표에서 물러난 오자와 간사장이 최근 중국 방문 등에서 실세 면모를 과시한 데 이어 급기야 '대권'에까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자와 간사장은 21일 TV도쿄의 프로그램 녹화에서 총리직에 매력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정말로 여러분을 위해서 할 수 있다고 (유권자가) 생각해주시는 때가 있다면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오자와가 마음만 먹으면 내일이라도 총리를 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야당 연합으로 자민당 정권을 처음 교체한 1993년 호소카와(細川) 내각은 발족 직후 지지율이 71%로 하토야마 정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4개월 후 60%로 떨어졌고 결국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결정타를 맞고 취임 8개월만에 총리가 물러나고 말았다. 지금 하토야마 내각의 지지율 하락 속도는 이보다 더 빠르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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