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 가운데 호랑이 그림이 그려진 가마보가 덮인 100여 년 전 가마가 놓였다. 조선시대에는 신부의 신행길 가마 위에 호랑이 가죽을 덮는 풍습이 있었다. 호랑이가 신부를 나쁜 기운으로부터 보호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호랑이 가죽이 귀해지자 호랑이 그림 가마보를 얹는 것으로 대신했다.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는 맹수지만 우리 문화에서는 이처럼 이로운 존재로 여겨졌다.
국립민속박물관이 호랑이띠 해를 맞아 23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 '변신, 신화에서 생활로'전을 연다. 1999년부터 민속박물관이 매년 여는 띠 특별전으로, 우리 문화 속에 나타난 호랑이의 모습을 120여 점의 유물과 자료를 통해 조명한다.
우리 조상들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인 호랑이를 든든한 수호신으로 바꾸어놓았다. 대표적인 예가 산신도(山神圖)다. 마을 뒷산 산신각에 자리했던 이 그림 속에서 산신들은 어김없이 호랑이를 타고 있다. 종묘제례악에서 마지막을 알리는 호랑이 모양의 타악기 '어(敔)', 조선왕릉을 지키는 석물인 석호(石虎)의 사진 등도 신성한 호랑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양한 부적 속 호랑이는 나쁜 것을 막아주는 벽사의 호랑이다. 물, 불, 바람에 의한 재해를 막아준다는 부적 '삼재부(三災符)'에는 머리가 셋 달린 매와 함께 호랑이가 등장한다. 매년 정초가 되면 궁궐과 민가에서 호랑이 그림을 대문에 붙인 것도 호랑이가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전시장에 나온 다양한 일상용품에서도 호랑이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호랑이 발톱 모양으로 장식한 노리개는 여성들의 호신을 상징했고, 돌이나 명절에 여자 아이들이 쓰는 두건인 굴레 뒷면에도 호랑이 문양을 수놓아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라기를 기원했다.
호랑이는 용맹함의 상징이기에 무관들과 가까웠다. 무관의 집무실에 놓였던 호랑이 가죽 모양의 병풍도, 무관 관복의 흉배를 장식했던 쌍호, 군대 시설물을 장식한 호렵도 등이 대표적이다. 19세기 무관이었던 조의복의 초상화에서는 권위와 용맹함을 과시하듯 호랑이 가죽을 깔고 앉은 모습과 가슴의 호랑이 장식을 볼 수 있다.
자생 호랑이가 멸종해버린 현대 한국에서의 호랑이는 예전처럼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나 대한축구협회의 호랑이 엠블럼, 군부대의 마크 등에서 호랑이는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있다.
전시를 기획한 학예연구사 구문회씨는 "우리 조상들은 야생의 사나운 호랑이를 문화 속으로 흡수, 친근하고 든든한 존재로 만들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헤쳐나간 조상들의 지혜를 배우고 2010년 호랑이띠 해의 의미를 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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