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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 칼럼] 행복국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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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 칼럼] 행복국가론

입력
2009.12.23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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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에 교육학계의 원로이신 정범모 교수께서 <미래의 선택> 이라는 책을 내었다. 이 책에서 그는 이전 20년 동안 한국 사회가 걸었던 물질성장 위주의 길을 비판하면서 '탈 발전'의 길로 들어서야 함을 역설하였다. 그것은 정신과 물질의 조화, 경제와 문화의 조화, 지방과 서울의 균형 발전 등 통합 균형 조화의 발전을 지향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또 20년이 지난 지금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물신숭배와 경제지상주의는 더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 같다.

경제지상주의 더욱 극성

대한민국은 분단된 상황에서 생존에 급급한 '안보국가'로 출발하였다. 전쟁을 겪고 북한과 대치하면서 안보는 나라의 으뜸가는 가치가 되었다. 완화되기는 하였지만 그런 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뒤 박정희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경제성장 정책 덕분에 우리는 가난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몇몇 분야에서는 세계의 으뜸을 달리는 강한 경제 국가가 되었다. 이를 우리는 '통상(通商)국가'라 부를 수 있다. 통상과 이를 통한 경제성장은 1960년대 이후 국가, 민간 할 것 없이 한국 사람들의 가장 큰 가치이자 추진 목표로 자리 잡았고, 이 점에서 우리는 자랑스러운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빈부격차의 확대와 수도권 집중, 환경 파괴, 정신적 고갈, 가치관의 전도 등 무수한 부작용들이 나타났음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가치관의 전도라는 말을 하다 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 말은 내가 대학생이던 1970년대에 유행하던 말이다. 정신적 가치나 윤리보다 물질 추구에 매진하고 인간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보는 현대 물질문명의 병폐를 비판하는 상투적인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무한 경쟁'시대에 '경쟁력'을 상실한 감상적인 인사쯤으로 치부될 것이다.'삶의 질'이란 말도 한때 유행했다. 10~20년 전쯤의 일이다. 하지만 그 뒤 신자유주의와 경쟁 이데올로기가 판을 치자 이 말 또한 사라지다시피 했다.

통상국가라고 해서 반드시 가치관이 전도되고 삶의 질을 우습게 보라는 법은 없다. 좀 더 균형 있고 인간다운 통상국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걸어온 길은 그렇지 못했다.

통상국가에서 한 걸음 더 나가면 '문화국가'를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예술과 과학기술이 꽃 피는 국가이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구성원 개개인의 상식수준과 정신 수준이 높은 나라를 말한다. 이명박 정부가 강조했던 법치도 이에 해당하지만, 어떤 법치냐가 문제일 것이다. 김구 선생이 "내가 바라는 대한민국은 문화가 활짝 꽃 피는 나라"라고 한 말씀은 참으로 고귀한 말이다. 그 당시의 비참했던 한국 사정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안보ㆍ 통상ㆍ 문화의 균형

그러나 나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행복국가'를 제창한다. 그것은 국민 개개인의 행복지수를 극대화시키는, 다시 말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행복해 하는 나라를 일컫는다. 이렇게 보면 문화국가도 결국은 행복국가의 한 구성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 나라는 정범모 선생의 <미래의 선택> 이 주창했던 조화와 균형의 나라이고, 김구 선생이 꿈꾸었던 문화국가이기도 하다. 안보와 통상 역시 한 몸으로 품는다.

행복국가의 구체적인 모습은 여기서 다 밝힐 겨를이 없다. 틈나는 대로 여기저기서 밝혔지만, 아직 더 구체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기본 가치관은 분명하다. 그것은 물질과 정신, 사람과 자연, 국가와 국민, 서울과 지방, 경제와 문화의 균형과 조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조화를 이룰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다음 숙제라 할 수 있다.

김영명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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