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요리사가 됐다. 미대 출신으로 20년 넘게 해오던 광고디자인 일을 접고는 3년 전 40대 후반 나이에 가족을 두고 단신 이탈리아로 떠났다. 요리학교 ICIF(Italian Culinery Institute for Foreigner)를 거쳐 해안휴양지 캬바리와 유서 깊은 산골인 구비오의 한 식당에서 주방보조로 이탈리아의 '바다와 산' 요리를 익혔다. 작년 말에 귀국했지만 쉰 살의 신참 요리사를 쓰겠다는 곳이 없어 고생 끝에 서울의 식당 두 곳에서 6개월 일했다. 그리고 지난달 서울 홍대 앞에 작은 식당을 열었다.
▦처음에는 취미였다. 광고 촬영을 위해 스페인에 갔을 때, 음식이 맘에 들어 서울에서 학원을 찾았지만 없었다. 한식은 제대로 할 자신이 없었다. 요리는 그에게 독창적 아이디어와 감각으로 광고를 만들던 때의 감흥을 되살아나게 해주었다. 그는 지쳐 있었으며, 어느덧 남의 광고가 더 참신하게 느껴지는 '한계'에 서 있었다. 어차피 인생 후반을 위한 두 번째 직업이 필요했고, 그것을 오너 셰프(식당 주인 겸 요리사)로 정했다. 그렇다면 제대로 해보자. 심지어 아내까지 "그 나이에"했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무모하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그는 식당 이름으로 휴식, 쉼표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를 쓰고 있지만 지향하는 것은 레스토랑이 아니라'격식 없는 동네 밥집'(트라토리아)이다. 주방장은 자기가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고, 동네 어른들이 찾아와 편안하게 먹는 공간. 씹으면 씹을수록 좋은 재료 본래의 맛이 살아나는 요리를 만든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새콤, 달콤, 매콤한 양념으로 떡칠한 자극적 음식이 아니라 가지면 가지 맛이, 호박이면 호박 맛을, 파스타면 고소한 밀가루 맛을 살린다. 이탈리아에서 배운 것이고, 어릴 때 시골 맛이다. 그래서 그의 주방에는 조미료가 하나도 없다.
▦50대에 요리사가 된 그는 직장에서 퇴직해 삼겹살 집을 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차이라면 "할 수 없이""대충"이 아니라 "정말 하고 싶어서""천천히, 철저히 준비했다"는 것. 제2직업이 아니더라도, 그는 50대 남자가 꼭 요리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노년에 혼자가 됐을 때 요리할 줄 몰라 혼자 식당을 전전하거나, 김치와 밥만 먹는다면 얼마나 비참한가. 제 철에 나는 야채로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즐거움이 노년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그래서 요즘 요리 배우려는 중년 남자들이 많아졌나. 이래저래 친구가 부럽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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