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제1차 미중 전략경제대화는 주요2개국(G2)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무대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왕치산(王岐山ㆍ61)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을 향해 "재정적자 관리를 잘하라"고 일갈해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왕 부총리는 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으로부터 농구 공 던지는 법을 직접 교습 받는 등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왕 부총리는'포스트 후진타오 시대'를 뛰는 6룡 가운데 맏형 격이다. 또 미 주간 타임이 선정한'2009년 가장 영향력 있는 글로벌 100대 인물'가운데 중국인으로서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부주석과 함께 선정될 만큼 해외 인지도 면에서 시 부주석과 어깨를 겨룬다. 헨리 폴슨 전 미 재무부장관은 그를 "과감하고 절도있게 일을 처리하며, 배움과 질문을 즐긴다"며 "중국경제를 성공적으로 이끈 추진력 강한 인물"이라고 극찬했다. 미국 등 서방의 중국 전문가들은 "나이가 다소 많은 것이 흠이지만, 중국의 차기 총리 감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왕 부총리는 보수파인 전 국무원 부총리 야오이린(姚依林)의 사위로 태자당에 속한다. 문화혁명 당시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의 농촌으로 하방된 그는 농사를 지으며 노농병(勞農兵)으로 대학을 나와 1976년 베이징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역사 연구소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역사학자로서 경제분야에 관심이 높았던 그는 관계에 진출 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광둥(廣東)성 공산당위원회 상무위원에 오른다. 그는 파산위기에 몰린 광둥신탁은행 문제를 해결하며 금융계 스타로 부상했다. 이를 계기로 2000년 장관급으로 발탁됐으며 2002년 하이난(海南)성 당서기를 맡게 된다. 그러나 5개월 만에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가 강타한 베이징을 구하라는 특명을 받게 된다. 베이징시 시장으로서 긴급상황을 솜씨 있게 해결하면서 2008년 부총리에 올랐다.
왕 부총리는 내년 중국 지도부 최대관심사인 상하이(上海)엑스포를 직접 챙기고 있어 앞으로 더욱 비중이 커질 것이 분명하다. 2012년 과연 왕 부총리의 존재감은 어떤 모습으로 차기 총리 구도에 투영될 지 기대된다.
■ 왕치산 국무원 부총리 약력
-1948.7 중국 산둥성 칭다오 출생, 시베이대 역사학과 졸업
-1982~86 중앙서기처 농촌정책연구실, 국무원농촌발전연구중심 처장
-1986~88 국무원 농촌발전연구중심 연구소장
-1988~89 중국농촌신탁투자회사 총지배인, 당서기
-1993~97 중국건설은행 행장, 당서기
-1997~2000 광둥성 상무위원, 부성장
-2000~2002 국무원 경제체제개혁사무실 주임, 당조직 서기
-2002~2003 하이난성 당서기
-2003~2007 베이징 시장, 베이징 올림픽위원회 집행주석
-2008~현재 중앙정치국 위원, 국무원 부총리
베이징=장학만 특파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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