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구둣발 끌며 걸어가는 취객이 골목으로 사라지자 마자 드르륵 상가 문이 올라간다. 마치 밤새 이 시간을 위해 대기한 듯 가게 앞에는 순식간에 시장이 펼쳐진다. 여명도 찾아오기 전 손길은 빠르고 묵묵하게 움직였다. 서울 중구 중림시장. 올 겨울 가장 추웠던 15일 새벽 바람에 곱은 손이라도 녹여 볼 요량으로 빈 생선 박스에 불을 붙인다."이젠 몸에 익어서 뭐..."아침을 준비하는 할머니는 가장 이른 시간의 힘든 노동을 대수롭지 않은 듯 수줍어한다. 퍽퍽 튀는 불꽃을 마주하며 손을 비비는 상인의 얼굴에서 삶을 느낀다
서초구청 환경미화원인 홍영수씨는 그래도 예전보다 나아진 형편을 위안 삼았다. "예전엔 지나가던 사람들이 앞길 막는다고 입에도 못 담을 욕을 많이 했죠. 요즘엔 달라졌어요. 저희를 기다렸다가 따뜻한 차를 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4시반, 시내버스 첫차 핸들을 잡은 이영철씨는 이 시각 승객들을 식구처럼 반가워했다. "차 안이라도 따스했으면 좋겠는데 마냥 공회전을 할 수 가 없어요. 다 우리 같은 사람들인데"대부분 새벽 손님들이 풍요롭지 못한 형편인 것을 안타까워한다.
흔히들 낭만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이들의 새벽에는 쉼표 없는 고단함이 배어난다. 푸른 어둠 속 각진 빌딩의 실루엣 사이로 그림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꿈틀거리는 듯 느릿한 걸음이지만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몸짓이다.새벽은 막연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보다 나은 무언가를 의미했다. 언제일지 모르나 당연히 오게 될 밝은 날, 누구나 대명천지(大明天地)를 기대하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미 다가온 그시간이 누구에겐 아직 목 빠지게 고대하는'그날'이기도 하다. 추운 겨울 긴 밤에도 아침은 그렇게 우리에게 희망이었다.
원유헌 기자 youhon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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