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 금메달로 무자년을 집어삼킨 '여자 헤라클레스'의 신바람은 기축년 들어 신드롬으로 진화했다.
지난 달 2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고양세계역도선수권대회. 장미란(26ㆍ고양시청)이 출전하는 여자 75㎏이상급 시작 시간은 오후 7시20분이었지만 이보다 앞선 오후 7시가 되자 출입이 통제됐다. 입추의 여지없이 관중이 들어찬 탓에 더 몰릴 경우 사고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주최측이 추산한 관중은 3,000명. 2,600석의 특설경기장이 차고 넘쳤다. 이날 출동한 경찰 100여명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경기장은 이미 축제 분위기. 팬들의 머리 속에 장미란의 금메달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국내에서 열리는 첫 세계선수권이라는 의미까지 더해 장미란이 짊어진 짐은 상상 이상으로 불어났다. 행여 실수라도 한다면 축제는 악몽으로 변할 게 뻔했다.
그러나 '바벨 여제'는 이변을 불허했다. 인상 136㎏에 용상 187㎏을 들어올린 장미란은 합계 323㎏으로 여유롭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용상 187㎏은 자신이 보유한 세계기록(186㎏)을 넘어서는 신기록이었다. 2위인 러시아의 타티아나 카쉬리나(합계 303㎏)와는 20㎏차. 중국은 장미란의 라이벌로 이름난 무솽솽 대신 무서운 신예 멍쑤핑 카드를 뽑아 들었지만 장미란과 27㎏의 격차를 확인할 뿐이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회 연속 세계선수권을 제패한 장미란은 홈에서 4연패 위업을 달성했다. 세계선수권 4연패는 한국역도 사상 유례없는 기록이고, 전세계 여자역도를 통틀어서도 통산 3번째에 해당하는 대기록이다. 장미란은 경기 후 "다음부터 한국에서는 안 하면 좋겠다"며 웃음 섞인 한숨을 쉬었다.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엄청난 중압감이 양 어깨를 짓눌렀다는 얘기다.
부담을 이겨내고, 이름 석자로 구름 관중을 모을 만큼 국내 아마스포츠의 대표브랜드가 된 장미란. 우쭐할 법도 하지만 장미란의 마음가짐은 역도 입문 당시인 중학교 3학년 때와 다를 바가 없다. "1㎏이 됐든 2㎏이 됐든 매년 내 기록을 올려나가는 게 목표입니다."
시나브로 전진하는 장미란의 앞길에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과 2012년 런던올림픽이 기다리고 있다.
양준호 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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