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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조각 선구자 권진규 회고전 덕수궁미술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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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조각 선구자 권진규 회고전 덕수궁미술관서

입력
2009.12.22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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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조각의 선구자로 꼽히는 권진규(1922~1973ㆍ사진) 회고전이 22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개막했다. 얼굴상과 동물상 등 조각 100점, 드로잉 40점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 전체를 조명하는 이번 전시는 그간 국내에서 열린 권진규 전시 중 최대 규모다. 대학 졸업작품인 '나부'(1953) 등 처음 공개되는 작품도 16점 포함됐다.

이번 전시는 일본에서 비롯됐다. 권진규의 모교인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이 개교 80주년을 맞아 이 대학 출신 대표 작가로 권진규를 꼽으면서, 지난 10월부터 이달 초까지 도쿄 국립근대미술관과 무사시노미대에서 동시에 전시를 열었다.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에서 한국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일본의 두 전시를 합친 것이 덕수궁미술관의 권진규전이다.

전시는 대학 재학 시절 제작한 작품, 인물상, 자소상, 부조, 동물상으로 나뉘어진다. 인물상의 경우 머리와 목 아래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유난히 긴 목선과 무표정하지만 강렬한 눈빛으로 시선을 잡는 권진규 특유의 기법이 뚜렷하다.

'애자' '명자' 등 각기 다른 이름이 붙어있지만, 그 얼굴들은 특정 인물의 것이 아니라 작가가 추구한 순수와 영원성의 반영이다. 자소상(自塑像)을 통해 만나는 권진규는 삭발한 종교적 구도자의 모습이다.

그는 비구니상에 자신의 얼굴을 중첩시켜 표현하는 등 불교에 심취했다. 1961년 숭례문 중수 때 제도사로 참여한 경험을 담은 부조 작업들은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전통 문양의 변형과 콜라주 등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볼 수 있다.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실린 '지원의 얼굴'로 익숙한 권진규는 한국적 리얼리즘을 정립한 조각가로 평가된다. 일본 유학 시절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다 1959년 귀국해 테라코타와 건칠(乾漆)이라는 특유의 기법으로 절제된 형상의 인물상을 빚어냈다.

그러나 추상이 득세하던 당시 한국에서 그의 작품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치부됐고, 병고와 외로움에 시달리다 "인생은 공(空), 파멸"이라는 유언을 남긴 채 51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생전에 "인간의 아이는 언젠가 죽지만 내가 만든 아이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테라코타를 선호한 것도 고대 무덤의 부장품들이 입증하듯 쉽게 썩지 않는 시간성을 지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전시는 내년 2월 28일까지.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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