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소련제 무기 '독버섯'처럼 세계로…核 밀거래 우려도
북한산 무기를 실은 평양발 그루지야 국적 화물기가 태국 당국에 억류된 사건에 대해 전문가들은 "복잡하고 조직적인 국제 무기암거래 네트워크의 일부분을 보여준 셈"이라고 말한다.
현재 국제 무기암거래 시장은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증가,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콩고 민주공화국 등 아프리카 국가의 내전이 끊이지 않고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계속되면서 반군세력은 풍부한 무기수요처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에 구소련권 국가와 이에 연계된 밀매조직들이 활개치면서 시장은 날로 성장하는 상황이다.
소련 붕괴로 가속화한 국제무기 암거래와 고도화하는 조직
무기암거래시장의 정확한 규모를 알기는 어렵다. 다만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005년 자동소총 등 불법 경화기 시장만 연간 40억달러, 전체 시장규모는 100억 달러까지 성장했다고 보도했다. 이 역시 추정이다. 국제 무기암거래가 그만큼 은밀하다는 방증이다. 구소련 붕괴 후 동유럽권에 형성된 밀매조직은 위조여권을 통한 신분위장, 유령회사 설립, 돈세탁 등 다양한 은폐수단으로 거래에 나서 각국 기관이 수개월 또는 수년에 걸친 함정수사를 통해서나 찔끔찔끔 커넥션이 드러날 정도다. 최근엔 현금거래 때문에 추적이 더더욱 어려워졌다.
주 구입자인 차드, 수단, 콩고 등이 석유, 광물 가격 상승에 따라 무기를 구입할 현금을 보유한 데 원인이 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문제연구소의 휴 그리피스는 타임에 "무기 밀거래를 적발하기 위해서는 '알카포네 방식'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미 사법부가 알 카포네를 살인 혐의로 기소하지 못하자 세금 탈루 혐의를 씌운 것처럼 무기거래 적발을 위해 별건 혐의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구소련권은 암거래 무기ㆍ인력 풀(Pool)
러시아 등 구소련 국가들은 무기 공급과 동시에 암거래 임무를 수행하는 인력풀이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구소련 시절의 유산인 600만개의 경화기와 최근 현대화에 성공한 탱크, 지대공 미사일 등을 앞세워 무기 공급자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는 대통령 선거 후 정국이 어수선한 케냐 정부에 4만정의 카라쉬니코프 소총을 판매했다. 또한 T-72 탱크 33대 등을 실은 우크라이나 무기 수송선이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되면서 행선지를 둘러싸고 외교 마찰이 일기도 했다.
일자리를 잃은 구 소련 주민은 무기 밀거래에 동원된다. 평양발 화물기를 운전했던 벨라루스 출신의 미하일 페투호프 역시 마찬가지다. 소련 공군에서 20년간 일했던 그는 6개월 동안 실직 상태에 있다가, 화물기를 조종했다. 죽음의 상인 빅토르 부트는 지난해 검거되기 전까지 탱크도 실어 나를 수 있는 소련화물기 수 대를 운용했으며 소련 출신 파일럿을 조종사로 부렸다.
핵무기 밀거래로 이어질 우려도 커져
큰 문제는 무기암거래가 핵물질로 확대될 경우다. 지난 17일 우크라이나인 3명이 플루토늄 3.7kg이 든 저장기를 1,000만 달러에 팔려다 당국에 적발돼 핵 밀거래가 단순 추측이 아님이 드러났다. 러시아에는 현재 소련 당시 축적한 핵연료 300톤이 남아 있다. 중동이나 테러단체 등 언제라도 핵무기ㆍ물질을 구입할 의사가 있는 국가나 단체가 존재하는 만큼 그 위험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국제적 불법 무기거래를 막을 국제사회의 역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뉴스위크는 "이 업무는 인터폴이 맡아야 하나 2004년 인터폴 예산은 5,000만 달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최지향기자 jhchoi@hk.co.kr
■ "北 무기 수송기 적발, 함정수사 가능성"
지난 11일 북한산 무기를 싣고 가다 태국 당국에 적발된 평양발 그루지야 국적 화물기는 핵심사항에서 여전히 미스터리에 쌓여 있다. 판매자가 북한이라는 것만 확실할 뿐 무기거래를 중개한 브로커와 구매자가 누구인지는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비행경로 등 여러 납득하기 어려운 정황을 풀어가다 보면 중앙정보부(CIA) 등 미 정보기관의 '스팅 작전(Sting Operation)', 즉 함정수사에 따른 작품이었을 개연성도 적지 않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3일 평양발 화물기가 북한의 우방인 미얀마가 아니라 미국의 군사동맹국인 태국을 재급유지로 택한 점 등을 들어 "미스터리하다"고 보도했다. 이런 점 때문에 태국 방콕에서 보안컨설팅 회사 책임자로 일하는 은퇴한 CIA요원 폴 콰글리아는 최근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지에 "화물기가 단순히 기름을 넣기 위해 방콕에 착륙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며 "화물기가 방콕에 내리기 까지는 누군가 처음부터 끝까지 막후에서 그렇게 되도록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데니스 블레어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도 18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를 통해 "미국 내 기관과 외국 파트너들 사이의 팀워크로 중동으로 향하던 북한무기를 압류했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히 도ㆍ감청을 통한 무기 밀거래 정보포착을 넘어 미국과 해외 정보기관의 적극적인 개입과 공조를 통해 압류가 이뤄졌음을 사실상 확인한 대목이다. 이렇게 미 정보기관의 함정수사로 압류가 성공했기 때문에 태국이나 미국 당국이 중간에 개입됐을 브로커나 이중 스파이를 밝히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외화벌이에 목마른 북한이 국제범죄에 나섰다가 미 당국의 함정수사에 걸려든 선례는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미 연방수사국(FBI)가 100달러 위조지폐인 슈퍼노트사건을 수사하면서 '로열 참 앤 스모킹 드래곤'이라는 작전명으로 펼친 함정수사다.
이는 2005년 아시아계 범죄조직에 FBI요원을 잠입시켜 위조지폐, 자동소총 등 무기류, 밀수담배 등을 미국 내로 밀수하려던 북한인을 포함한 범죄조직원 80여명을 검거한 사건이다. 미국은 이 수사의 성공에 힘입어 위조지폐 제조와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을 통한 돈세탁 혐의로 북한에 금융압박을 가했고, 북한은 핵실험과 6자회담 거부로 맞서 한반도에 극도의 긴장이 초래되기도 했다.
지난해 '죽음의 상인'으로 불리는 러시아 무기상 빅토르 부트 검거사건도 미국의 함정수사에 의한 것이다. 미 마약단속국은 콜롬비아 반군으로 위장, 지난해 3월 방콕에서 무기거래 협상을 시도하는 척하면서 부트를 체포했다. 부트는 여러 개의 여권을 소지하는 등 신분세탁에도 능했지만 함정수사에 덜컥 걸리고 말았다.
정진황기자
■ PSI·항공 보안 강화… 각국 불법 무기 규제 노력
태국에 의한 북한산 무기 적발 과정에서 확인된 미국의 정보제공과 미국 및 태국의 공조는 직접적으로는 북한의 무기수출을 금지한 유엔결의 1874호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제 작전에 있어서는 미국 주도로 2003년 출범해 그 동안 무기밀매 단속을 위한 네트워크 능력을 길러온 국가간 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구상(PSI)이 톡톡히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PSI는 WMD는 물론, 미사일 같은 운반수단과 이를 구성하는 부품 등을 규제 대상으로 한다. 이를 싣고 가는 선박 등을 해상에서 검색해 필요에 따라 화물을 압류할 수 있다.
항공기의 경우 2006년 유럽연합(EU)이 영국발 항공기 테러 기도 적발 이후 항공보안 규정 강화로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12개국 92개 항공사에 대해 취항을 금지하면서 무기운송 관여 회사가 어느 정도 걸러졌다는 평가다. 다만 이번에 태국에 억류된 화물기 소유주 에어웨스트는 러시아 무기상 빅토르 부트 소유의 운송회사가 명의만 변경해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WMD 의심 선박'등에 대한 차단 조치는 적잖게 이뤄졌다. 특히 북한과 관련된 유엔 결의 1874호는 34개 조항 가운데 화물 및 해상검색 관련 조항이 7개에 달할 정도로 실질적 PSI 활동을 내용으로 하는 차단 요소를 상당수 포함한다.
중동이나 아프리카 분쟁지역 등으로 흘러 들어가는 무기가 늘면서 추적에 어려움이 따르지만 방법은 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항공기나 선박을 등록해야 한다는 점이 무기 수출의 취약점이라고 지적한다. EU의 항공기 규정 강화처럼 무기를 옮기는 수단을 제재하는 게 가장 확실하다는 얘기다.
지난 10월 유엔총회 산하 군축위원회에서는 각국에 무기거래 통제협약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이 결의안은 불법적인 무기 수출입과 이전을 규제하는 내용의 협약 채택을 요구하고 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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