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밀레니엄을 맞은 뒤 지난 10년간 나타난 한국 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이념 갈등이 부풀려졌다는 점이다. '이념 거품' 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일반 국민들의 이념 분화에서는 큰 변화를 읽을 수 없지만 정치권이 이념을 상대방 공격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이 실제 이상으로 증폭됐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19일 "최근 이념 갈등이 심화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일반 국민들의 이념적 분화가 심화됐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이념적 분화가 심화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근 한국정치학회 연례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 '한국의 이념 갈등과 이념 지형의 변화'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이념 갈등이 일상화되는 주요 이유는 기존의 정치제도를 통해 이념 갈등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권이 이념 대립을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그 근거로 일반 국민의 이념성향은 중도로 통합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비해 여야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는 중도층의 비율이 줄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념적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 국민들의 이념적 분화를 촉진시키는 사회 · 정치적 요인들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세계적으로 냉전체제 종식과 세계화 흐름, 국내적으로 민주개혁세력의 잇단 집권과 그에 따른 포용적 대북정책 등 우리 사회의 탈이념을 위한 물리적 환경이 강화됐다고 볼 수 있다.
실제 한국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국민들의 이념성향을 보면 이념 지형이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2002년과 2007년, 2009년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큰 차이가 없다. 자신의 이념 성향이 대단히 진보적이면 0점, 중도적이면 5점, 대단히 보수적이면 10점이라고 기준을 정해서 0에서 10 범위 내에서 숫자로 대답하도록 한 결과 세 번의 조사에서 이념지수 평균치는 각각 5점 안팎이다.
2002년 5월에는 진보 24.9%, 중도 38.6%, 보수 34.7%였고, 2009년 6월에는 진보 28.0%, 중도 38.9%, 보수 27.2%로 나타났다. 2009년 조사에서 보수층이 진보와 중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감소했지만 눈에 띌만한 큰 변화는 아니다.
반면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이념 갈등은 격화됐다.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IMF 경제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하고 '햇볕정책' 등 대북 유화정책을 펴자 보수 진영은 '좌파 정권'이라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등 민주개혁세력이 주도한 정권이 10년간 이어지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는 서로 '친북 좌파' '보수 꼴통'이라고 몰아세웠다.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벌어졌던 '민주 대 반민주' 및 '진보 대 보수' 논쟁이 왜곡된 이념 충돌로 대체된 것이다. 이런 대립 과정에서 국민들이 이념을 떠나 실용을 추구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정치권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이념 갈등을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이념 대립이 실제보다 과장돼 나타났다"며 "이념 갈등이 스스로 해소될 수 있도록 인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국 기자 dkkim@hk.co.k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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