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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나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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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나쁜 사람들

입력
2009.12.2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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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자 강원일보에 황당한 기사가 실렸다. 김모(67ㆍ강원 강릉시)씨가 친구들과 함께 인천대교 주변을 1만5,000원에 관광한다는 버스를 탔는데, 도중에 버스가 한 농장의 건강보조식품가게에 들렀다. 가이드와 운전기사가 상품 구매를 권하기에 거절했더니 버스에서 내릴 것을 요구했다. 관광비용을 돌려받기는 했으나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김씨가 정정하고 친구들도 있었기에 망정이지 큰 곤란을 당할 뻔했다. 이 기사가 생각난 것은 16일 발생한 경북 경주시 관광버스 사고로 31명의 사상자가 났다는 뉴스 때문이었다.

▦경주 사건의 피해 노인들은 당초 2만2,000원씩 내고 울산으로 '온천 및 음식 관광'을 계획했었다. 출발 직전 한 관광회사가 1만원씩에 온천과 오리고기 점심이라는 파격 제안을 해 코스를 바꿨다 한다. 이 회사는 귀가 길에 건강보조식품회사에 들르자고 제안했고, 값싼 관광에 고마움과 미안함을 갖고 있던 어르신들이 동의했다. 서투른 운전자가 내리막과 급커브가 많은 새로운 길에서 사고를 냈으니 "차라리 1만2,000원씩 더 내고 원래대로 왔다면 화를 면했을 텐데"하는 안타까움이 클 수밖에 없다. '효도 관광'으로 포장된 얄팍한 상혼이 함께 드러났다.

▦어르신들은 쉽게 미안함을 느끼고 조그만 고마움에도 보답하고 싶어 한다. 이를 역이용하여 얄팍한 쌈짓돈을 긁어내려는 상혼은 참으로 고약하다. 효도관광을 미끼로 어르신들을 모아 농장이나 식품점으로 유인한다. '우리 농산품 설명회'나 '장수만세 세미나'를 급조하고, 건강보조식품이나 의료보조기구를 파는 장소로 안내한다. 어르신들을 위해 값싼 관광을 시켜주는 회사니 어르신들을 위해 '값싸고 좋은 제품'을 '특별히 소개해 준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그릇세트 라면박스 계란꾸러미 등을 무료로 안겨주며 고마움과 미안함을 자극하기도 한다.

▦이렇게 구매한 물품을 자녀나 친지들이 취소를 요구하는 경우가 당국에 신고된 것만 전국에서 연간 수천 건. 하지만 이런저런 조건이 숨겨져 있어 취소는 거의 불가능하다. 나의 어머니도 그렇게 혼자 장만한 물건이 적지 않다.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자식들의 마음까지 이용하고 있다. 나름대로 대책을 세웠다. 결정을 하기 전에 "자식에게 물어보겠다"고 하거나 실제로 전화를 할 것, 그렇지 않으면 '희망의 전화 국번없이 129'나 한국소비자원(02-3460-3000)에 전화를 할 것. 진정으로 효도관광을 베푸는 많은 분들에게 참으로 죄송한 일이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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