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가로수 한 그루가 죽었다. 죽는 데
꼬박 삼년이나 걸렸다. 삼년 전 봄에
집 앞 소방도로를 넓힐 때 포클레인으로 마구 찍어 옮겨심을 때
밑둥치 두 뼘가량 뼈가 드러나는 손상을 입었다. 테를 두른 듯이 한 바퀴 껍질이 벗겨져버린 것,
나무는 한 발짝 너머 사막으로 갔다.
이 나무가 당연히 당년에 죽을 줄 알았다. 그러나
삼년째, 또 싹이 텄다. 이런, 싹 트자마자 약식절차라도 밟았는지 서둘러 열매부터 맺었다. 멀쩡한 이웃 나무들보다 먼저
가지가 안 보일 정도로 바글바글 여물었다. 오히려 끔찍하다, 끔찍하다 싶더니 이윽고
곤한, 작은 이파리들 다 말라붙어버렸다. 나는
나무의 죽음을 보면서 차라리 안도하였으나,
마른 가지 위 이 오종종 가련한 것들
그만, 놓아라! 놓아라! 놓아라! 소리 지를 수 없다. 꿈에도 들어본 적 없는 비명,
나는 은행나무의 말을 한마디도 모른다.
● 김훈의 <공무도하> 라는 소설을 읽다가 해마다 얼마나 많은 가로수들이 죽는지 알게 됐습니다. 새 나무를 옮겨심어도 도시의 땅은 깊지가 못해 쉽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이 시에서처럼 대개 뿌리를 다쳐서 말하자면 삼 년 정도밖에 살지 못하고 죽을 운명이라네요.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도시에서 죽은 나무를 만나는 일은 왜 그렇게 힘든 것일까요? 옮겨 심고 삼 년 정도가 지나면 죽는 나무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요? 그건 구청 직원들이 열심히 죽은 나무의 흔적을 없애기 때문이지요. 그게 바로 이 세속도시의 정책이지요. 하지만 안 보인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죠. 공무도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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