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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성공 스토리] <8·끝> 청도 '눌미 복숭아' 강창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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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성공 스토리] <8·끝> 청도 '눌미 복숭아' 강창덕씨

입력
2009.12.2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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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사꾼들은 흔히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하지만 소비자는 땅보다 농사꾼의 거짓말을 더 빨리 압니다."

경북 청도군 화양읍에서 한 평생을 복숭아와 씨름해온 강창덕(68)씨는 성공비결을 이렇게 정리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창덕농장에서 복숭아 재배에 매달린 지 44년이 지나도록 그가 변치 않고 지키는 철학은 "농업은 서비스업"이라는 것.

강씨는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빈농에서 어엿한 부농으로 성장하게 된 원동력은 남들보다 앞선 기술을 도입하기보다 남들보다 먼저 소비자의 취향을 알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빈농, 복숭아에서 길을 찾다

대구의 한 상업고등학교 야간부를 다니며 은행원을 꿈꿨던 강씨가 복숭아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65년.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자 그는 고교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와 가업을 이을 수 밖에 없었다. 출발은 벼 농사.

하지만 쌀은 생계 유지 수단이었을 뿐 돈 되는 일은 아니었다. 강씨는 "젊은 나이에 귀농을 했는데 평생 가난한 농사꾼으로 살기는 싫었다. 농사를 지어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대안으로 찾은 것이 복숭아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청도천변을 따라 감과 사과를 주로 재배했던 시절. 하지만 감은 인건비가 많이 들고, 사과는 수확량이 갈수록 떨어져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강씨는 복숭아로 눈을 돌렸다.

강수량이 적고 일조량이 많은 지역의 기후 특성을 최대한 살리고, 무엇보다도 수확이 상대적으로 쉽다 점에 착안한 선택이었다. 주변에서는 "농사도 모르는 젊은이가 혈기만 앞세워 곧 망할 것이다" 고 했지만 첫 수확을 하던 해이던 감과 사과보다 단위 면적당 두 배 이상의 수익을 거두면서 보란 듯이 성공했다. 강씨는 이후 유행을 타지 않고, 복숭아 재배에만 열중하며 자신만의 성공 신화를 써 갔다

농사의 중심은 소비자다

강씨는 자신이 거둔 성공에 대해 "내 땅보다 먼저 내 복숭아를 사주는 소비자를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었다"고 강조했다. 최신 기술로 좋은 품종의 복숭아를 생산하는 것보다, 소비자 기호에 맞춘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 진정한 농사꾼이라는 그의 철학.

실제 과일 별로 신품종 도입이 유행처럼 번지던 80년대 중반, 강씨는 기술보다는 포장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당시 대부분 과일은 나무궤짝에 넣어 무게를 달아 팔았는데, 아무리 좋은 복숭아도 지저분한 나무궤짝에 들어간 순간 상품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강씨는 "도시 소비자들은 포장이 잘 된 깨끗한 과일을 먹고 싶어하는데 생산 농가는 많이 생산해 파는 데만 신경을 썼다"면서 "일본처럼 종이상자에 넣어 팔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농협의 지원도 큰 힘이 됐다. 국내에서 과일을 담을 종이상자를 구경도 할 수 없던 시절, 청도 농협측은 수소문 끝에 종이상자 생산업자를 찾아내 이를 싼값에 제공하면서 강씨의 짐을 덜어 줬다.

그리고 강씨가 서울 가락동 청과물 시장에서 전국 최초로 종이상자에 든 복숭아를 내놓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강씨 마을의 15㎏짜리 한 박스의 경매가격은, 당시 전국 최고였던 전주 복숭아 20㎏짜리를 웃돌 정도였다.

강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종이 박스에 생산 농가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써 넣은 '복숭아 실명제'까지 실시하고, 마을 이름을 딴 '눌미'라는 상표로 브랜화에 나서 전국 최고의 복숭아로 인정을 받게 됐다.

농업은 서비스업이다

강씨는 90년대 들어 품질의 평준화를 위해 작목반을 구성하는 '품질 시스템 혁신'에 나서며 또 한번의 도약기를 맞았다. 작목반은 인근 농가의 복숭아를 수집하고, 품질의 객관성을 더하기 위해 생산농가를 제외한 나머지 반원들이 등급을 나누는 일종의 등급 분리반이다.

깨끗한 포장에 매년 균등한 품질의 '눌미 복숭아'를 시장에 내놓자 유명 고급 백화점의 주문이 쇄도했고, 농가의 수익은 껑충 뛰었다. "내 물건을 사 주는 사람들은 결국 도시 소비자들입니다. 이들을 위한 서비스 정신이 없으면 어떤 농사든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지요."

그는 농정(濃政)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강씨는 "농사꾼이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년 이상이 걸리는데 정작 농업정책은 장관이 바뀔 때마다 수시로 바뀐다"며 "장기적 안목에서 농업을 또 하나의 서비스업으로 인식하는 농정이 나와줘야 사양길에 접어든 우리 농업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청도=글ㆍ사진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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