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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정부의 시장 '팔 비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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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정부의 시장 '팔 비틀기'

입력
2009.12.2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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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워싱턴 정가에 유행하는 속어 중에 'jawbone'이라는 말이 있다. 행정부가 주로 민간업계를 상대로 정책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할 것을 촉구한다는 뜻이다. 우리 말로 하자면 정부의 힘을 암시하는 '팔 비틀기' 정도가 아닐까 싶다.

과거 백악관은 정책의 고비마다 '팔 비틀기'를 시도했다.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철강업계에 임금을 낮추는 방식으로 치솟는 철강 가격을 내리도록 압력을 가했고, 린든 존슨 대통령은 인권법, 이민법 등을 관철하면서 'jawboner'라는 명성을 얻었다. 전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효과를 보지는 못했지만, 원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수 차례 말씨름을 벌였다.

오바마와 월스트리트의 대결

지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본격적인 '팔 비틀기'를 하고 있다. 상대는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월스트리트이다. 14일 백악관에서 열린 거대 금융기관 최고경영자(CEO)들과의 회동이 그 현장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민의 세금(구제금융) 덕에 월스트리트가 다시 살아났으니, 이제는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며 중소기업에 대한 과감한 대출을 촉구했다.

그러나 그의 첫 '팔 비틀기'는 벌써 실패라는 말이 나온다. 정치자금을 매개로 한 의회와 월스트리트와의 뿌리깊은 유착, 경기를 살려야 한다면서 한편으로는 신용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정부의 혼란스런 정책 등 애초 여건이 안 돼 있는 탓이다. CEO들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했다. 언론에서는 CEO들 대부분이 뉴욕에서 워싱턴까지 일반 항공기를 타고 온 것만도 최대의 '성의'를 보인 것이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지난해 자동차 '빅3' CEO들이 구걸하러 오면서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오다 호된 비판을 받은 것을 빗댄 것이다.

최근 월스트리트의 대형 금융기관들이 지난해 정부로부터 받은 구제금융 상환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것은 더 이상 정부 간섭을 받지 않겠다는 뜻이다. 임원들에 대한 연말 보너스가 다시 천문학적으로 뛸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고, 맨해튼의 초호화 레스토랑과 명품 백화점, 고급 자동차 시장은 벌써부터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그러나 서민들의 생활은 차갑기만 하다. 미 자선단체의 80% 가까이가 구호 수요는 늘었는 데 반해 자선기금은 크게 줄어 이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다 졸지에 실직에 몰린 중산층이 생활고에 허덕이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버티다 자선단체의 도움을 청하거나, 자살로 생을 끝내는 스토리는 부지기수이다.

플로리다의 한 자선단체 직원은 "음식을 부탁한 한 가정을 찾아갔는데, 겉모습은 매우 풍족해 보였지만 가구 등 세간살이를 모두 팔아 치워 아이들이 맨바닥에서 자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경험담을 전했다. 농무부 통계에 따르면 '적절한' 영양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는 미국인이 4,900만명이고, 이 같은 '음식 불안정성'은 농무부가 통계를 잡기 시작한 1995년 이후 최고이다.

공동체의식 밑바탕은 도덕성

'시장은 만능'이라는 말을 곧잘 듣는다. 시장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기와 그 이후의 월스트리트를 보면 시장에는 탐욕을 절제하는 힘이 태생적으로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장에 공동체 의식을 불어넣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팔 비틀기'가 아니다. 업계와의 유착과 같은 검은 고리를 끊어 정부가 먼저 도덕적으로 우월해지는 것이 시장을 다루는 요체이다.

황유석 워싱턴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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