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의 대표적 해맞이 명소인 전남 여수시 향일암(向日庵ㆍ전남도문화재 자료 40호)이 잿더미로 변했다. 강한 바닷바람에다 소방차 진입이 어렵고 진화시설도 갖추고 있지 않아 문화재급 유물들이 다수 소실됐다.
20일 0시24분께 여수시 돌산읍 향일암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 대웅전(51㎡)과 종무실(27㎡), 종각(16.5㎡) 등 사찰 건물 8개 동 가운데 3개 동을 태우고 3시간여 만에 진화됐다.
이 불로 대웅전에 있던 청동불상 3개와 탱화 2점 등 문화재급 소장 유물도 함께 소실됐다. 불은 대웅전 내부에서 시작돼 5~6m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 종무실과 종각으로 번졌으며, 화재 직후 사찰에 있던 승려와 신도 등 16명은 긴급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었다.
불이 나자 소방대원, 공무원, 주민 등 250여명이 나서 진화작업을 벌였지만 사찰이 금오산 중턱에 있어 소방차 접근이 쉽지 않은데다 당시 건조한 날씨 속에 초속 6m의 강한 바람까지 불어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날 향일암에서 불과 15㎞ 떨어진 여수소방서 군내지역대 소속 소형 소방차 1대가 화재현장에 최초로 도착하는데 21분이나 걸리는 바람에 초기 진화에 실패했다.
길이 800m에 달하는 향일암 진입로도 폭이 2.5m에 불과해 대형 소방차는 화재현장까지 올라가지도 못한 데다 옥외소화전도 없어 소방관들이 암자 내 저수조 3곳(저수용량 25톤)에서 물을 뽑아 진화에 나선 탓에 불길을 잡는데 애를 먹었다.
사찰 측은 "이달 초 실시한 전기안전점검 결과, 대웅전 안에 설치된 누전차단기는 이상이 없었고 화재 발생 전날 밤 11시께 순찰을 돌 때도 대웅전에는 촛불이 꺼져 있었다"며 "일단 대웅전에는 자연발생적으로 불이 날 요인이 없어 외부인에 의한 방화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경찰도 방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다. 경찰은 전소된 대웅전 등 화재현장을 정밀 감식하는 한편 돌산대교에서 향일암으로 가는 주요 길목과 검문소, 주유소 등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화면 등을 확보해 거동이 수상한 용의자 등에 대한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방화로 단정 지을 만한 증거나 결정적인 목격자는 없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화재원인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향일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화엄사 말사(末寺)인 향일암은 서기 659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국내 4대관음기도 도량 중 하나다.' 해를 바라본다(向日)'는 뜻의 향일암은 바다와 맞닿은 금오산 언덕에 위치해 기암절벽의 동백나무와 수평선 일출을 즐길 수
있어 새해 일출제 때마다 관광객이 몰리는 해맞이 명소다. 1984년 2월 전남도 문화재 자료 제40호로 지정됐으며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위치해 연간 60만명의 관광객과 참배객이 찾고 있다. 올해도 31일부터 새해 첫날까지 일출제가 열릴 계획이었다.
여수=김영균 기자 ykk22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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