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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아버지, 그 아득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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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아버지, 그 아득한 당신

입력
2009.12.2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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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버지의 다양한 초상을 담은 산문집 <아버지, 그리운 당신> 을 대산문화재단에서 펴냈다. 한 시대와 삶의 거울이 문학이고 그 생산자인 문학인들이 그린 아버지이기 때문인지 '각각인 동시에 우리 시대의 아버지'라는 의미를 부여 받으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책을 펴낸 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어떻게 이 책을 내게 되었는가'와 '책을 내는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는지'였다. 전자는 왜 새삼스럽게 낯선 이름 아버지를 불러내느냐는 것일 테고, 후자는 그런 아버지에 대한 글을 모으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일 것이다.

원고를 정리하고 서문을 쓴 다음 책의 제목을 '아버지, 거기 그 아득한 당신'이라고 정하려고 했다. 독자들에게 다가서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에 부딪혀 결국 접기는 했지만, 1년 가까이 그 일에 매달리며 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거기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득하게 부재하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쓴 이들도 업이 글쟁이인데도 '아버지'라는 보통명사가 갖는 무게와 울림, 그리고 그 안에 담고 있는 수많은 삶과 시간을 더듬어 길어 올리는데 적잖이 부담스러워했다. 아버지와 함께 한 가족사진을 가지고 있는 이 또한 많지 않았고, 아버지와 둘이 찍은 사진을 가진 사람은 더욱 드물었다. 아마도'어머니'라는 존재가 가족서사의 중심에서 헌신 희생 치유 안식 사랑 등의 숭고한 모성성으로 신화화 되어 바라보는 편차가 크지 않은 반면,'아버지'라는 존재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화 이후 세상의 격랑을 가장 먼저 온 몸으로 맞으면서 치열하게 일가를 이룬 성공한 장인에서부터 평범하지만 열심히 산, 혹은 무능하거나 도태된 장삼이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 아버지의 초상은 다양하고 그 서사의 진폭 또한 크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그의 자리는 없거나 그림자만 드리운 채 관심 밖에 있었던 것이다. 인류에게 가장 오래되고 핵심적인 사회 단위인 가족은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두 존재가 중심축을 이루면서 구성되고 그럼으로써 온전히 존재한다. 따라서 아버지의 부재는 우리가 너무 혹은 애써 외면하고 무심했던 결과 때문일 수 있다.

지난해 상해 임시정부 수립 60주년을 맞아 그 길을 되짚어 가는 여정에 오른 적이 있다. 상해에서 가흥 항주 무한 남경을 거쳐 중경에 이르기까지 수천km 먼 길에서 참으로 많이 울었다. 칠흑 같이 암담한 길을 선택하고 고난을 묵묵히 몸으로 헤쳐 나간 용기도 놀라웠지만 아무것도 기약할 수 없이 쫓기는 피난길에서도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족을 꾸리는 삶이 있었다는 것에 더욱 가슴이 뭉클했다. 험난한 그 길에서도 어린 자녀와 가족을 위해 꼼꼼히 일기를 쓰고 편지를 남긴 한 독립운동가의 모습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 아버지의 참 모습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아버지, 그리운 당신> 에 글을 쓴 한 소설가의 말처럼 누구에게나 "어느 순간, 갑자기 아버지의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운명처럼 찾아오기 마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개는 그 순간이 너무 늦게 오거나, 와도 후회하는 때가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 순간이 오기 전에, 아니 더 늦기 전에 아버지에게 혹은 자녀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용기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곽효환 시인 ·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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