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거리는 상상력과 대담한 언어로 가득찬 첫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2005)로 평단을 긴장시켰던 김민정(33)씨가 두번째 시집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문학과지성사 발행)를 상재했다. 더럽고 치사하고 경멸스러운 세상 앞에서 그것을 우회하지 않고 '더럽고 치사하고 경멸하겠다고 쓰겠다'는 에너지가 김씨의 시를 밀고간다.
모든 위선적인 것들에 대한 김씨의 저항감은 생래적인데 이번 시집에는 그 제목이 풍기는 묘한 뉘앙스처럼 '19금' 딱지를 붙여야 할 것 같은 성적인 언어, 비어, 속어, 육두문자들이 넘실거린다. 그의 방식은 예컨대 이렇게 지독하다. 사랑과 이별이라는 청춘의 애틋한 사건을 그는, '사랑해라고 고백하기에 그 자리에서 오줌을 싸버렸다 이보다 더 화끈한 대답이 어디있을까… 줘도 못 먹은 건 그러니까 내 잘못이 아니란 말이다'('시,시,비,비'에서)라고 쓴다.
학교로 상징되는 폭력적 현실, 여성들의 육체를 물화시켜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선, 성스러움을 가장하지만 종교의 이면에 자리잡은 속악함 등은 김씨의 시를 먹여 살리는 양식들. 그것들에 대한 시인의 경멸과 저항은 제도와 윤리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데 그 여운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가령 '10항'을 자꾸 '시방'으로 발음하는 교사의 심한 사투리 억양에 웃음을 터뜨렸다가 슬리퍼로 얻어맞은 학창시절의 체험을 김씨는 '최초의 화장 경험'이라며 스스로 조롱한다. '얻어맞아 부어오른 볼때기에 발냄새가 밸까 때 타월로 문지르니 그게 볼터치라 했고, 내 화장의 역사는 그로부터 비롯된 것'('김정미도 아닌데 시방 이건 너무하잖아요'에서).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링클 케어와 자외선 차단 크림, 수분 마스크를 죄다 늘어놓으며 샤넬 NO.5 향을 풍기는 여승을 목도한 뒤 느낀 절망감은 김수영 식으로 패러디된다. '…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김수영 아저씨 그러고 보니 이미 44년 전 다 해먹고 토끼셨구나'('어떤 절망'에서).
"시와 다르게 실제의 나는 공격적이지 못하다. 소심하다"는 김씨는 첫 시집을 낸 뒤 들끓는 비판에 속앓이를 하다가 2년간 시를 못썼다고 한다. "너를 가지치기하려는 정원사들을 죽여라"라는 한 선배 시인의 격려에 용기를 냈고 그후 한 해 동안 "시가 스멀스멀 들어오는 느낌에 즐겁게 시와 맞짱을 뜰 수 있었다"고 한다. 중앙대 문예창작과 출신으로 199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그는 "첫 시집을 내고 하늘을 날아가는 것처럼 스스로 좋아했다면, 두번째 시집을 통해서는 사람들과 함께 땅에서 걸어다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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