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치밀한 '연막 전술'이었던 것일까. 18일 검찰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제시한 체포영장의 혐의사실이 지금까지 알려졌던 것과 상당부분 달라 그 경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 전 총리 측은 검찰이 제시한 체포영장을 확인한 뒤 "2006년 12월 20일 총리 관저에서 지인 수명과 식사를 한 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한테 대한석탄공사 사장 선임 청탁과 함께 2만달러와 3만달러가 각각 담긴 봉투 2개를 받았다는 게 혐의 내용"이라고 밝혔다.
당초 알려진 '2007년 초 남동발전 사장 선임 청탁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에서 금품수수 명목과 시점이 달라진 것이다.
정치권과 언론은 지금까지 곽 전 사장이 2007년 4월 남동발전 사장에 선임된 점에만 주목했다. 검찰도 이를 뒷받침하듯 남동발전 전 감사 L씨와 모기업인 한국전력 이원걸 전 사장을 소환 조사했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 인사비서관을 지낸 문모씨도 불러 남동발전 사장 선임 경위 등을 캐물었다.
이처럼 혐의 사실이 알려진 것과 다른 것에 대해 검찰의 '포커 페이스'에 한 전 총리 측이 당한 모양새라는 해석도 나온다. 검찰이 수사방향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성동격서 식 수사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한 전 총리 측도 처음에는 석탄공사와 관련된 수사로 보고 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체 파악 결과, 곽 전 사장의 총리 공관 방문 시점이 2006년 12월 말이고, 그 시점에는 남동발전 사장 선임이 거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후 수사가 남동발전 쪽으로 흘러가는 듯 보이자 크게 안도했다고 한다. 양측 간 치열한 수(手) 싸움이 전개됐던 셈이다.
허를 찔린 듯하지만, 한 전 총리에게 석탄공사 사장 건이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해석도 있다. 오히려 검찰수사에 대한 방어 논리를 세우기가 용이하다는 것이다. 당시 석탄공사 사장직은 정권실세 A씨가 사실상 인사권을 행사하는 자리로 돼있어서 어느 누구도 함부로 끼어들지 못했다는 게 당시 청와대와 여당 인사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이런 탓인지 곽 전 사장은 석탄공사 사장 공모과정에서 서류심사에선 1위를 했으나 "업무관련성이 적다"는 이유로 인사추천위원회의 심의에서 탈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총리 측 인사들은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한 전 총리가 석탄공사 건으로 무리하게 금품을 받았을 가능성은 상식적으로 높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동발전 관련 수사가 검찰에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 전 총리가 곽 전 사장의 남동발전 사장 취임 한 달 전 총리직에서 물러난 데다, 곽 전 사장이 현 정부를 상대로 사장직 유임 로비도 벌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자칫 검찰수사가 참여정부 당시 다른 핵심실세나 현 정부의 각료급 인사 등으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건은 역시 곽 전 사장의 진술이다. 검찰이 관련자 진술 외에 다른 증거를 확보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으나, 핵심 물증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진술의 일관성을 기소 후에도 유지시키는 데에 이번 수사의 명운이 걸린 셈이다.
곽 전 사장의 알려지지 않은 치명적인 범죄 정황을 검찰이 포착해, 이를 무기로 압박해 그의 진술을 받아냈다는 말도 검찰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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