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정체성과 폭력' 야만으로 조작된 정체성은 폭력을 부르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정체성과 폭력' 야만으로 조작된 정체성은 폭력을 부르고…

입력
2009.12.21 00:34
0 0

/아마르티아 센 지음ㆍ이상환 김지현 옮김/바이북스 발행ㆍ327쪽ㆍ1만 8000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팔레스타인이 많은 피를 흘리면서 시작한 2009년의 세계는 새해가 며칠 남지 않은 지금도 곳곳에서 분쟁에 시달리고 있다.

199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도 출신 석학 아마르티아 센(66ㆍ하버드대 교수)은 이런 폭력의 배경으로 정체성의 갈등을 지목한다.

그는 민족 정체성이나 종교 정체성, 또는 민족과 종교가 결합된 종교적 민족성이 부딪쳐 증오를 부른다고 본다. 하지만 그러한 정체성이 실은 '환영'일 뿐이며,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정체성과 폭력> (부제 '운명이라는 환영')의 요지다.

이 책은 정체성에 대한 오해와 왜곡, 그로 인한 환영을 다룬다. 대표적인 것이 정체성은 단일하다는 가정이다.

예컨대 냉전 이후 세계의 갈등을 문명 간 대결로 풀이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하나의 문명권 안에도 다른 문명이 공존하는 현실을 무시한, 그러니까 기본 전제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따라서 문명은 충돌한다거나 충돌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문명 공동체라는 '단일 정체성'을 인정하는 데서 비롯된 오류라고 지적한다.

센은 민주주의는 서구적이라는 믿음,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옹호, 세계화에 대한 거부감 등에도 '단일 정체성'이라는, 배타적이고 호전적인 환영이 깔려 있음을 날카롭게 간파한다.

센은 야만적으로 조작된 정체성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 경고하며 실제 사건들을 환기시킨다. 르완다에서 일어난 대량 학살이 그랬다.

종족 정체성을 앞세운 분파주의는 오직 후투족이냐 투치족이냐만 따져 편가르기를 했고, 그 결과 '종족'을 떠나 '인간'을 보려는 이성은 사라지고 야만이 득세하면서 참극이 벌어졌다.

센은 "단일 정체성이라는 운명은 없다"고 강조한다.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다원적인 것이어서 하나의 낙인을 찍을 수 없다며 개인의 선택과 자유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환영에 덜 감금된 세계를 꿈꾸며' '정체성에 앞서 이성을'이라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크고 묵직하게 들린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