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차명재산과 관련한 세금으로 1,700억원을 납부한 사실이 이 회장의 전직 자금관리인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뒤늦게 확인됐다. 이는 이 회장이 최소 수천억원대의 차명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단서가 될 수 있어 관심이 집중된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김창석)는 이 회장의 개인자금을 관리하다가 투자금 회수를 위해 살인을 청부한 혐의 등(살인미수교사,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ㆍ배임ㆍ사기 등)으로 기소된 CJ그룹 전 자금관리팀장 이모(40)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공소사실 전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20일 밝혔다.
재판부는 "증인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고 객관적 정황으로도 이씨가 범행을 교사하거나 공모했다고 볼 수 없다"며 이씨가 자금 운용을 맡긴 박모씨를 살해하려 했다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재판부는 이씨가 이 회장의 개인자금을 빼돌려 손해를 입힌 혐의(횡령ㆍ배임)에 대한 판단에서 이 회장의 차명재산을 언급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관리하던 차명재산이 수천억원에 이르고 차명재산이 드러나면서 피해자(이 회장)가 1,700억원을 넘는 세금을 납부한 점으로 볼 때 사채업자에게 빌려준 170억원은 이씨가 관리한 차명재산 중 그다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 없다"며 "이런 점 등에 비춰 피고인에게 횡령ㆍ배임의 범의(犯義)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납부한 세금 규모로 미뤄 이 회장의 차명재산 보유 규모가 최소 수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돼, 이 회장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보다 훨씬 많은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됐다. 비자금 조성에 대한 추가 수사로 이어질지도 주목된다. 지난해 청부살인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 당시 드러난 비자금 규모는 300억~400억원 규모였다.
경찰은 지난해 9월 이씨의 청부살인 및 횡령ㆍ배임 혐의에 대해서만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경찰은 이 회장의 비자금 조성 혐의에 대해서는 "개인자금의 상당액이 조부인 고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에게 증여받은 것"이라는 CJ측 주장을 받아들여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지 않고 국세청에 관련 사실을 통보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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