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뇽하쎄요!" "캄사합니다!" 지난 6일 서울 지하철 노원역 구내에 설치된 구세군 자선냄비 옆에서 금색 종을 연신 울리는 외국인 여성 셋이 행인들의 발길을 끌었다. 지나던 길에 이들을 보고 냄비에 성금을 넣은 정세영(14)군은 "외국인이 종을 치고 있으니 신기하다"며 다시 한번 돌아봤다.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한국구세군 자선냄비 봉사에 나선 이들은 노원구에서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는 엘리자베스 켄디그(23ㆍ미국), 로빈 파프(29ㆍ미국), 캐롤 섹스미스(27ㆍ캐나다)씨. 한국에 온 지 9개월 됐다는 켄디그씨는 "한국에서 맞는 첫 크리스마스를 의미있게 보내고 싶어 동료인 로빈, 캐롤과 함께 봉사자 모집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한국구세군 관계자는 "이들의 활약 덕에 평소 18만원 안팎이던 성금이 이날은 24만원이나 걷혔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고려대 교환학생으로 온 일본인 하라다 치카(22)씨는 9월 서울의 한 장애인 시설에서 페인트 칠 작업을 했다. 하라다씨는 "땡볕에 온종일 붓을 들고 서 있느라 힘들었지만 기뻐할 장애인들을 생각하니 힘이 났다"고 말했다. 하라다씨와 함께 봉사에 나선 파키스탄 출신 학생들은 마침 라마단 기간이어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봉사를 했다고 한다.
유학, 취업 등으로 한국을 찾은 20, 30대 외국인들 가운데 봉사를 통해 타국 생활에서 보람을 찾고 인맥과 경험을 쌓으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에 따르면 올 4월부터 국내 체류 외국인을 대상으로 운영해온 '서울글로벌봉사단 W(World의 약자)' 프로그램 회원 수는 첫 달 20명에서 이달 220여명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회원 중엔 유학생, 학원 강사, 원어민 교사 등이 많고, 국적은 미국, 일본, 파키스탄, 필리핀 등으로 다양하다. 회원들은 사회복지, 외국어 교육, 환경, 문화 등 자기가 원하는 분야의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예컨대, 친환경 비료 주기에 참여하려면 환경 분야에, 장애아 문화공연 관람을 도우려면 문화 분야에 참여하는 식이다.
센터 측은 예상 밖의 호응에 놀라고 있다. 김문정 간사는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에 봉사센터가 설치돼 있지만 통역 등의 문제로 봉사 참여가 어렵다는 외국인들의 민원에 따라 전용 센터를 신설했는데 바로 반응이 왔다"고 말했다.
외국인 봉사자가 늘어나는 것은 먼저 봉사에 대한 관심과 참여 기회가 많아지고 있는 국내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왔다가 지난 6월 자국으로 돌아간 일본인 오코 카요(20)씨는 최근 센터에 보낸 이메일에서 "한국에서 임대아파트 대청소 활동을 하면서 봉사의 즐거움에 눈을 떴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귀국 후 외국학생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며 봉사하고 있다"는 근황도 전해왔다.
낯선 나라에서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고 알찬 여가를 보내고 싶다는 현실적 이유도 작용하고 있다. 구세군 봉사를 했던 파프씨는 "지난 7, 8월 노숙자 배식 봉사에 참여하면서 한국은 물론, 미국 홍콩 일본 파키스탄 등 다국적 친구들을 10명쯤 사귀었다"며 "덕분에 다른 나라 문화를 배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켄디그씨는 "평일엔 학원 강의로 바쁘기 때문에 주말 봉사에 나가서 한국인 친구를 사귀고 간단한 인사말도 배웠다"며 "한국에 있는 동안 온전히 이곳 주민이고 싶고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많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아름 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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