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나이 57세. 요즘같이 조진조퇴(早進早退)하는 세상에 '현역'이라는 자체가 축복이다. 더구나 40만 돼도 잊히는 충무로에서, 그것도 여성으로서. 출판사에 있다가 1986년에 입문했으니 벌써 23년이나 됐다. '영화 홍보 마케팅'하면 '채윤희'이고, '충무로의 대표적 홍보마케팅사'하면 남의 밑에서 일하던 그가 1994년 직원 2명을 데리고 시작해 지금은 한 해 25편의 영화를 만지는'올댓시네마'를 꼽는다.
영화에서도 특히 마케터들은 고되다. 스스로 '노가다'라고 말한다. '을'중에서도 '을'이다. 투자자나 제작자는 물론 배우 감독 매니저들에게까지 시달린다. 칭찬보다 욕이 많다. 몇 년 전, 어느 시상식에서 마케팅상을 받은 영화인은 이렇게 말했다. "흥행이 잘되면 영화가 좋아서고, 망하면 홍보 잘못이라고 한다. 공(功)은 없고 과(過)만 있다." 충무로 불변의 진리 중의 하나다.
10년째 모임 대표자인 마케터
오래 버티기가 쉽지 않다. 영화 마케팅을 연출이나 제작으로 가는 관문쯤으로 여기니 끝없이 사람이 바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윤희씨는 영화마케터를 고집한다. 그라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때론 사람들로부터 상처도 받는다. 다른 재주나 기회가 없어서도 아니다. 그는 연극에서 아역배우였고, 유명한 연극연출가인 오빠(채윤일)도 있다. 누군가는 이 일(영화마케팅)을 꾸준히 해야 된다고, 그래서 후배들에게 열심히 하는 선배가 있구나 하는 것과 나름대로 전문성을 보여주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우물만 파는 천성 탓도 있다고 했다. 천성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는 한결같다. 사람관계에서나 일에서나 편안하다. 가장하거나 까다롭지 않다. 솔직하다. "이 영화 보면 실망하겠지만 제작자가 정말 어렵게 만들었으니까 잘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그것이 그의 힘이다. 여성영화인모임의 대표를 10년째 맡고 있는 것도 그의 이런 천성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이야 충무로에서'여성'이란 단어가 차별이나 소수를 의미하지 않지만, 10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이 땅에서 여성영화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한숨과 절망이 있었다. 여성영화인모임의 '여성'역시 그런 의미였고, 모임 또한 그것을 내세우려 했다면 채씨는 아무리 주위에서 권해도 대표를 맡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에 여성 인력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그냥 만나고, 정보교환 하는 편안한 모임이 좋다. 누가 봐도 그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스스로도 인정한다.
여성영화인 모임에는 영화계의 고질인 세대간 갈등도, 직종간 차별의식도, 정치적 색깔 구분도, 개인의 욕심도 없다. 그의 말대로 무채색 같은 단체다. 누구나 아이디어 내고, 돈 없으면 조금씩 내고, 틈 내서 후배들을 위한 워크숍 열고, 올해의 여성영화인을 뽑아 서로 축하해 주고. 그렇게 10년을 지나왔다. 처음 40명이던 회원이 지금은 450명으로 늘었다. 현장영화인 중심이지만 이 모임이 좋아 참여한 배우들도 있다.
그 모습을 부러워하며 "역차별"이라고 말하는 남성 영화인들도 많다. 15일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열린 '2009 여성영화인 축제'와 '올해 여성영화인 시상식'도 실수와 웃음이 이어졌고, 여배우 예지원 엄지원이 기꺼이 자원봉사(진행)를 했다.
"비결이 뭐냐, 당신의 역할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대답이 너무 싱거웠다"나도 잘 모른다. 특별한 역할 없다. 나 자체가 모든 사람들을 편안하게 생각하고, 누구도 미워하지 않다 보니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되었나 보다."
순수ㆍ화목 단체운영의 본보기
채윤희 대표라고 욕심이 없을까. 모임의 재정도 탄탄하게 만들고 싶고, 후배들을 위해 뭔가 더 해주고 싶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보다 사람들이 찾아오고, 사람들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소중하다. 세상에는 온갖 모임이나 단체들이 넘쳐난다. 영화계라고 예외가 아니다. 대표들은 저마다 '순수'와 '화목'을 외치지만 조금만 지나면 속내가 드러나 단체가 깨지고, 사람들이 떠나곤 한다. 그래서 더욱 채윤희 대표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는지도 모른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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