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의 마지막 밤, 광화문에 있었다. 광화문에서만 새 아침의 해가 뜰 리 없고 새천년이 시작될 리도 없는데, 그 밤에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작정하고 광화문으로 쏟아져 나온 것만 같았다.
나는 신문을 사러 나온 참이었다. 세종로 사거리 가판대는 서울에서 가장 먼저 조간신문이 배포되는 곳이었다.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굳이 세종로까지 나온 것은 난생 처음 신문에 내 소설이 실렸기 때문이었다.
새천년 첫날의 설렘
생각 같아서는 시내 가판대의 신문을 다 사고 싶었다. 누구도 보지 못하게 없애 버리고 싶은 마음과 지나가는 사람에게 호외처럼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겹쳤다. 두 마음 중 겸손한 마음은 과장된 것이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진심이라는 걸 알았으나, 밀려드는 인파 때문에 광화문 한복판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다행히 가판대를 모두 뒤진다는 생각은 쉽게 포기할 수 있었다. 호외로 돌리지 못할 바에야 누군가 내가 펼쳐 든 신문을 훔쳐보기라도 했으면 하고 바랐으나 모두들 새천년이 온다는 흥에 취해 남이 든 신문 따위는 눈여겨보지도 않았다.
신문 두 부를 사서 겨우겨우 가방에 넣고 인파를 헤집고 근처 극장으로 갔다. 자정에 개봉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지난 세기를 통렬하게 반성하고 자책하는 영화였다. 주인공은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줄 알고도 자꾸만 또 다른 잘못을 저질렀다. 관객들이 울적한 기분에 젖어들 때에도 나는 좀 우쭐해 있었다. 가방 안에 당선작이 실린 2000년 1월 1일자 신문이 있어서였다. 그러니까 1999년이 아니라 2000년. 그것은 이제 내가 영화에서와 같은 과거가 아니라, 새로운 천 년에 속하게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영화가 끝난 후 뭔가 들뜬 마음으로 거리로 나섰지만 금새 조금 풀이 죽었다. 새천년이 내린 거리는 지난 세기의 어느 날보다 더 소란스럽고 흥청망청하고 쓰레기와 토사물로 가득 차 더러웠다. 세상은 우쭐하고 들뜬 내 마음처럼 조금 경박해졌을 뿐 조금도 달라져 있지 않았다. 새해 첫날의 신문이 담긴 가방을 들고 그 소란한 거리를 통과하면서 소설가로서의 출발이 너무 들떠서 경박한 그 새벽의 풍경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변한 것은 들떠서 경박해진 내 마음뿐이었다.
새천년 첫날의 설렘이 짧았던 것처럼 당선이 주는 기쁨은 각별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오히려 소설을 쓰라는 청탁이 없어 용기를 잃고 스스로를 의심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소설가가 되었지만 소설을 쓰지 않게 되었다. 당선 사실을 잊을 만큼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소설을 썼다. 당선의 기쁨은 단 한번뿐이었지만 소설을 쓰는 기쁨은 소설을 쓰고 있을 때면 종종 찾아왔다. 그제야 소설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등단했기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소설을 쓰고 있어서였다.
지금도 나는 누구든 소설을 쓰는 사람은 소설가라고 믿는다. 등단을 했건 아니건, 청탁이 오건 오지 않건 어느 한 순간에 매혹되어 소설을 써 나간다면 이미 소설가나 다름없다고. 중요한 것은 등단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쓰는 것이다.
소설 쓰는 기쁨이 더 커
예나 지금이나 소설가로서 내가 믿는 것은 나탈리 골드버그의 평범하고 단순한 한 문장뿐이다. '마침내 입을 닫고 자리에 앉아 글을 써야 한다'는 것. 그게 무엇이라도 쓰지 않으면 소설이 되지 않으니까.
신춘문예에 당선된 사람들은 축하 받아 마땅하다. 그 동안 열의를 가지고 수고하고 노심초사한 것을 생각하면 축하는 정당하다. 그리고 행여 당선되지 못해 상심한 사람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소설을 쓰던 순간의 기쁨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는다"고.
편혜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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