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중국을 주나라가 지배하던 시절의 일이다. 주나라의 건국과 안정에 큰 공을 세운 두 신하가 바로 주공과 강태공이었는데, 이들은 주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 각자 노(魯)나라와 제(齊)나라 지역을 맡아서 다스리게 되었다고 한다.
균형발전이냐 국가경쟁력이냐
어느 날 주공이 강태공에게 물었다. "제나라를 어떻게 다스릴 계획이십니까?" 그러자 강태공은 "오로지 능력 있는 사람을 중용하고 공에 따라 상을 내릴 것입니다."라고 했다. 주공은 "하지만 그러면 앞으로 제나라에서는 신하가 임금을 죽이는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강태공이 주공에게 물었다. "주공께서는 노나라를 어찌 다스리려 하십니까?" 이에 대해 주공은 "나이 많은 사람을 중용하고 사람들이 예절을 지키도록 할 것입니다." 강태공은 "그러면 앞으로 노나라의 국력은 쇠약해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역사책에 나오는 이런 대화가 정말 일어난 것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과연 강태공의 제나라는 훗날 춘추전국시대에 춘추오패와 전국칠웅에 들면서 중국 최강의 국가를 이루기는 하였으나 신하인 전(田)씨에 의해 강태공의 후손들이 임금 자리에서 쫓겨나게 된다. 반면 노나라는 유명한 공자를 배출할 정도로 예를 숭상하는 도덕적인 국가가 되지만 국력이 약해져서 훗날 제나라에 흡수된다. 이런 노나라와 제나라의 국가 운영철학을 현대식으로 해석하면 노나라는 국민화합과 균형 발전을 중시한 것이고, 제나라는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재미있는 것은 두 가지 서로 다른 국가 운영 철학은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인 세종시 문제나 서민들의 복지 문제, 특목고 존폐문제, 노동조합법 문제 등에서 여전히 남아 대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 경쟁력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세종시 추진을 중단하고 복지보다는 발전에 중점을 두며, 특목고를 통해 우수한 소수를 육성할 것인가 아니면 균형 발전과 국민화합을 위하여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하고 복지에 힘쓰며, 특목고를 폐지하고 노동조합을 활성화시킬 것인가는 제나라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노나라를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와 일맥상통한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IT 산업을 비롯하여 새로운 기술변화로 인하여 대규모 인력이 동원되는 산업보다는 전문적 지식을 지닌 창의적 소수가 산업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또한 국제 교역이 크게 증대되어 국가의 경쟁력이 낮아지면 외국의 상품들이 국내의 상품들을 제치고 국내 시장마저 점령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경쟁이 심화되는 현실에서 능력있고 우수한 사람 또는 기업을 대접해 주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음이 명백하다.
반면, 생산에 있어 전문적 지식의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던 시기에는 사람들 간의 임금 격차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생산성 격차가 아주 큰 상황이 되어버림으로써 빈부 격차가 계속 커지고, 국제 교역의 증대에 따라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사람은 해외의 저임금 노동자들에 의해 일자리가 위협 받게 됨으로써 사회적으로 큰 불안요소가 되고 있다.
역사가 알려 주는 것은 노나라와 제나라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효율성과 경쟁력을 등한히 한 노나라는 존경은 받았지만 결국 제나라에 흡수되어 나라가 망했고, 화합과 예의를 등한히 한 제나라는 내분이 그치지 않고 하극상이 반복되어 평화롭고 안정된 국가 운영에 실패하였다.
의견 달라도 신뢰할 수 있어야
저물어 가는 2009년을 돌이켜보면 노나라와 같은 정책을 원하는 국민과 제나라와 같은 정책을 원하는 국민들 사이에 많은 대립이 있었던 한 해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이제 의견 대립을 넘어 서로를 불신하는 상황까지 온 것 같은 느낌이다. 노나라의 정책도, 제나라의 정책도 100% 옳은 답이 될 수 없다. 부디 내년 2010년에는 의견의 대립은 있으되 신뢰는 회복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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