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먼 하우스 지음ㆍ천샘 옮김/돌베개 발행ㆍ272쪽ㆍ1만2,000원
언어는 증발하고 차가운 포말에 반사된 빛의 이미지만 남은 듯하다. 책이란 본디 말과 문장의 적층이겠지만 이 책에는 언어의 퇴적을 허물어뜨리는 원시의 힘이 넘친다. 그 힘은 모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생명력이며, 그 눈부신 모습에 회심한 인간의 경건하고 도저한 의지다. 진화와 문명화의 긴 강을 거슬러 다시 태초의 둔치에서 조우하는 두 종(種)의 북받치는 풍경이 <북태평양의 은빛 영혼, 연어를 찾아서> 에 담겼다. 북태평양의>
저자 프리먼 하우스는 '연어 사냥꾼'이었다. 바다에 나가 정치망으로 연어를 건져 올리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근육이 바다의 힘을 버틸 때마다 적잖은 돈이 수중에 들어왔지만, 그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방황했다. 어느 날, 그는 발 밑에서 퍼덕이며 죽어가는 연어의 몸부림을 견디지 못하고 그 연어의 배를 갈라 심장을 꺼내 씹었다. 그리고 그는 야생 연어의 번식과 회귀를 돕는 생명운동가로 변신한다.
이 책은 저자가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해안의 매톨 강 유역에서 활동하는 '매톨 유역 연어 보호 그룹'과 '매톨 복구 협의회'의 운동을 기록한 것이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세상의 무관심을 아프게 고발하면서, 동시에 끊임없는 분투로 내적 혁명을 이룬 스스로의 고백을 전한다. 그는 담담한 어투로 자신이 속한 단체의 활동을 기술하는데, 사이사이 연어와 인간이 함께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홍적세의 기억까지 더듬는 인문적 사유가 번진다. 돋보이는 것은 그것을 명징하게 새긴 문학적 언어들.
"연어와 나는 물 속에 함께 있다. 뼛속까지 느껴지는 이 만남의 본질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가슴을 뻥 뚫어버리는 경이. 그리고 가끔은 식도의, 혹 복부의 군살, 죄어오는 관자놀이 같은 현실로 나타나기도 하는, 희미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두려움."(30쪽)
지극히 섬세한, 그리고 필경 고독할 것 같은, 한 남자의 목소리를 좇다 보면 내 속에 똬리를 튼 '인간이라는 그릇된 우월감'을 부끄럽게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연뿐 아니라, 기실은 인간의 내면에서 더 광포하게 진행 중일 파괴의 바람을 느끼게 된다. 저자는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을 잃어버린 '어떤 기억'에서 찾고자 한다.
"우리는 더 자란다. 인간의 기억은 분리된 경험이 아닌 장소 자체의 기억, 감당할 수 없는 외로움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줄 전체의 일부가 된다… 이 이야기들이 인류의 기억 속에 살아남지 못한다면, 연어는 또다시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253쪽)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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