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13일 평양 순안공항.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분단 55년 만에 이뤄진 첫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이곳에 도착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마중 나왔고 두 사람은 뜨겁게 포옹했다. 이틀 뒤 두 정상은 통일 방안과 이산가족 상봉, 경제협력 원칙 등을 담은 6ㆍ15 남북공동선언에 합의했다.
그로부터 7년이 흐른 2007년 10월2일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금단의 선이었던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었다. 이틀 뒤 10ㆍ4 남북정상선언이 나왔다.
지난 10년 남북관계 발전은 눈부셨다. 두 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은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어갔다. 이후 21번의 장관급 회담, 13번의 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를 통해 교류의 폭을 넓혔다. 북한 인민군 부대가 주둔했던 군사분계선 북쪽 5km 지점에 개성공단이 생겨 남쪽 근로자가 출퇴근하고 있다. 1985년 이후 중단됐던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17차례나 진행됐다. 남측은 매년 40만톤 안팎의 식량을 북한에 제공했다. 통일부 집계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대북 지원 총액은 2조7,304억원이다.
하지만 두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었던 '햇볕정책'은 남남갈등을 불러왔다. 한나라당 등 보수 진영은 "대북 지원은 일방적인 퍼주기"라고 비난했다. 북한은 남측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뻣뻣함이 여전했다. 특히 북한은 자신을 악의 축 국가로 규정한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와의 갈등 속에서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올 5월에는 2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국민들도 대북 피로감을 호소했다. 2007년 말 한국일보 여론조사에서는 62.8%가 대북정책 속도조절론을 지지했다. 2000년 정상회담 직후만 해도 곧 통일이 이뤄질 것처럼 흥분했지만 그 효과는 지속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관계는 대립과 갈등의 구도로 접어드는 양상이다. 개성공단은 한 때 위기에 처했고, 식량 지원은 중단됐다. 최근 대북 신종플루 치료제 지원으로 물꼬가 트이기는 했지만 모래로 쌓은 성처럼 불안한 남북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2000년 이후 남북관계는 대결에서 대화와 협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한 성과가 있었다"면서 "하지만 남북관계가 너무 정치에 발목을 잡혔고, 제도화를 이루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했으며, 남북의 신뢰 부족으로 우여곡절이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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