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피를 찍어 한 글자 한 글자를 새기듯 작성한 원고를 신문사에 보냈던 신춘문예 응모자들이 당선 통보 전화를 기다리며 조바심을 내고 있는 연말이다.
201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는 마감날이었던 지난 4일자 소인이 찍힌 응모작, 미처 마감날에 맞추지 못하고 부랴부랴 뒤늦게 원고를 들고 찾아온 응모자들의 작품에 대한 추가 접수를 완전히 끝낸 15일부터 부문별 심사에 들어갔다. 시, 소설, 희곡, 동화, 동시 5개 부문의 응모작은 모두 4,253편으로 시 2,794편, 소설 340편, 동시 826편, 동화 203편, 희곡 90편이 접수됐다. 지난해(4,563편)보다는 약간 줄었고 2008년(3,868편)에 비하면 증가했다. 소설 부문 응모작이 3년째 꾸준히 증가한 점이 특기할 만했다.
단지 응모작의 숫자로는 측정할 수 없는 신춘문예 지망생들의 뜨거운 열정은 올해도 변함이 없었다. 시 부문 심사위원들은 난해성 때문에 수년간 논란의 중심에 있던 실험시 계열 작품들의 퇴조 현상이 두드러진 반면, 소통 가능성이 열려있는 전통 문법에 따른 작품들이 많았다고 평했다. 심사위원들은 "시라는 것은 대화의 한 형식인데 최근 몇 년 간은 현실을 이탈하거나 환상적인 기법을 중시해 소통을 도외시하는 시들이 양산됐었다"며 "젊은 시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에 발을 디디고 서서 일상에서 시적 제재를 발견하려는 노력인데 올해는 대다수 응모작이 그런 경향이어서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고령화사회에 접어든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반영하듯 노년의 상실감, 병과 죽음 등을 다룬 작품들이 부쩍 늘었다는 분석도 덧붙여졌다.
소설 부문 응모작들은 전통적으로 사회적 이슈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예심 심사위원인 소설가 하성란씨는 "올해는 '또 불황이 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반영하는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또 '갑자기 거액이 생기면 어떤 일이 생길까'라는 한탕주의적인 발상에서 출발한 작품이 기억난다"고 전했다.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범죄행각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의 응모작,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팀의 선전으로 촉발됐던 야구 열기를 반영하는 야구소설 등 소설 부문 응모작들의 스펙트럼은 역시 넓고도 다양했다. 예심 심사위원인 소설가 김인숙씨는 "주인공이 노인인 작품, 노년의 고독감을 다룬 작품이 꽤 많았다"며 이는 "문화센터나 창작교실 등이 활성화돼 신춘문예 지망생들이 늦은 나이에 문학에 입문한다 해도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기 때문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역시 예심 심사를 맡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씨는 "응모작들은 기발한 이야기를 꺼내거나, 고전적 방식으로 완성도를 추구하는 스타일로 크게 양분됐다"며 "테크닉이 뛰어나지만 삶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 결여된 작품들은 아쉬웠다"고 말했다.
동시 응모작들은 세련되게 언어를 다루는 기법이 돋보인 작품들이 많았다는 호평을받았다. 심사위원들은 "전반적으로 응모작들의 수준이 높고 고른 편이었다"며 "역량있는 기성 시인들이 잇따라 동시집을 내는 등 동시에 대한 미학적 관심이 높아진 점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반면 "언어를 다루는 기교 면에서는 발전을 했지만, 진정성의 측면에서 시를 읽을 때 주는 감동을 주는 작품은 부족했다"는 고언도 있었다.
동화 부문 심사위원들은 미래사회를 예상하는 과학소설이나 호러소설 같은 작품들이주목됐다고 밝혔다. 심사위원들은 "멀티미디어 시대에 고전적인 방법으로는 변화된 아이들의 취향을 따라갈 수 없다는 공감대가 확산된 것 같다"며 "동화에서도 장르문학과의 접속이 활발해지는 것은 분명한 현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미디어의 부정적 영향도 거론됐다. 동화에서 도발적 상황을 설정할 때 상당히 조심스러웠던 과거와 달리 극단적인 가족관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세운 응모작들도 상당수였다는 것. "막장 드라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희곡 부문 심사위원들은 중량감 있는 작품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심사위원들은 "가족관계, 아버지 부재, 일상, 성적 변태성 등을 주제로 한 글쓰기가 정형화하는 듯한 점이 아쉽다"며 "좋은 글쓰기의 기본은 외부의 현상에서 극적인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난 성찰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5개 부문별 당선작은 2010년 1월 1일자 한국일보에 발표된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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