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에게 2009년은 '잃어버린 1년' '잊고 싶은 1년'이었다.
전임 청장들의 잇따른 불명예 퇴진으로 몸살을 앓았던 국세청은 작년 한해 겨우 몸을 추스르는가 싶더니, 올해 또 다시 큰 홍역을 치러야 했다.
올해 초 한상률 전 청장의 중도하차와 반년에 가까운 청장공백사태 끝에 백용호 청장을 맞아 새 출발을 다짐했지만, 과거의 어두운 단면(안원구 국장 구속과 한상률 전 청장 관련 잡음)이 다시 불거져 나오면서 국세청은 또 한번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가장 곤혹스런 사람은 백용호 청장이었다. 취임 이전에 벌어졌던 '과거사'인 만큼 본인과는 무관한 사안들이지만, 어쨌든 추락한 국세청의 신뢰를 복원하는 일은 그가 풀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백 청장은 2010년의 키워드를 '투명'과 '공정'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통해 본인의 취임 일성이었던 '국세청을 권력기관 아닌 세정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생각이다.
다만, '보여주기'식의 개혁플랜을 제시하기 보다는, 전 직원이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본연의 역할을 다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백 청장은 직원들에게 "개혁은 밖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본연의 임무를 차질 없이 진행하는 것"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내년 신년사도 투명세정, 공정세정을 통해 국민신뢰 회복을 다짐하는 쪽으로 작성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내년 국세청의 업무방향도 '투명하고 공정한 과세'로 집중되고 있다. 세금을 정상적으로 내는 납세자에게는 최대한의 세무 서비스를 제공하고, 탈세자는 끝까지 추적해 무거운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국세청은 고소득 전문직과 변칙 상속자, 해외재산 은닉자 등 '악성 탈세자'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특히 백청장은 해외도피성 자금에 문제점을 강조하고 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최근 국세청 차장 직속으로 기존 해외은닉재산 전담 태스크포스(TF)를 흡수해 3개반 15명으로 확대ㆍ개편한 '역외탈세 추적 전담센터'를 발족한 바 있다.
반면 성실 납세자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아끼지 않도록 했다. 법인세를 성실하게 내는 기업과 신사협정을 맺어 국세청이 직접 세무상담을 해주고, 억울하게 세무조사를 받는 사람에게는 납세자 보호관을 통해 보호받도록 했다.
아울러 세무행정뿐 아니라 그 동안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 온 인사 시스템 개혁도 강화하고 있다. 백 청장은 공정 인사를 위해 인사위원회를 설치하고, 권한은 지방청장 등에 대폭 위임하는 대신 내부 검증을 강화하는 시스템 개혁에 나섰다.
실제 최근 사무관과 서기관 승진 인사 당시 전원 감찰대상에 올려 서기관 승진 후보자 137명 가운데 14명, 사무관 승진 후보자 239명 가운데 26명을 부적격자로 분류, 인사위원회에 올리지도 않았다. 특히 인사 청탁을 한 7명에 대해서는 승진 대상에서 탈락 시켜 개혁의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 국세청 고위간부는 "과거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부끄럽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도려내야 할 부분이었던 만큼 올해의 고통이 국세행정 정상화에는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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