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면 일의 처리는 쉽겠지만, 너무 밋밋하다. 의견이 갈리고 서로 자기 주장을 강하게 펴야 긴장감이 생기고 밀의 밀도가 높아진다.
제50회 한국출판문화상 심사가 그런 자리였다. 지난 14일 열린 본심은 심사위원 다섯 명이 제각각 또는 무리를 나눠 공방을 벌인 뜨거운 시간이었다. 18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심사평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났지만 가장 치열했던 부문은 학술과 번역 부문이었다. 학술에서는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공동체론> <환재 박규수 연구> <지배와 공간> 등이 경합했다. 심사위원들이 돌아가며 책의 의미, 장점, 한계 등을 수 차례 밝힌 끝에 앞의 두 권 가운데 하나를 선정하기로 했다. 지배와> 환재> 공동체론> 고구려>
하지만 다시 오랫동안 의견을 주고 받고도 그 한 권은 고를 수가 없었다. 결국 다른 부문을 먼저 심사, 열기를 식힌 뒤 다시 학술 부문 심사를 시작했지만 이번에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은 마지막으로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공동체론> 두 권을 놓고 한 명씩 솔직한 의견을 밝혔다. 그렇게 하고도 단 한 권의 수상작은 끝내 고를 수 없었다. 제50회 한국출판문화상 학술 부문은 결국 두 권의 공동수상작을 냈다. 공동체론> 고구려>
번역 부문의 고민도 학술 못지않았다. <완역 이옥 전집> <거대한 전환>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등 어느 것을 선정해도 무방하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토의 내용이었다. 난산 끝에 <홀로 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 를 수상작으로 결정한 것은 유대인 500만 명을 학살한 참극이 어떤 구조 속에서 가능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심사위원들은 밝혔다. 하지만 유대인 학살 문제가 '상업화' 한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있었다. 최근 이스라엘이 이슬람권에 보이는 공격적, 배타적인 태도를 감안하면 홀로코스트와 관련한 출판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홀로> 한국독립운동지혈사> 거대한> 완역>
심사위원들은 "심사의 어려움을 새삼 깨달았다"며 "내년부터는 '심사위원특별상'이라도 만들어 경합 끝에 떨어진 좋은 책을 시상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해 우리 출판계를 결산하는 최고 권위의 '책의 축제', 더구나 올해로 출범 반세기가 돼 더욱 뜻깊은 한국출판문화상의 심사 현장은 그렇게 치열하면서도 즐거운 자리였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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