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한 주물 업체가 미군의 사제 폭발물 및 지뢰 방어용 특수 방탄 장갑차인 '엠랩'(MRAPㆍMine Resistant Ambush Protected)의 주요 차체(샤시) 부품을 전량 납품하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이 업체는 올해 1,100만달러를 수출한 데 이어 내년에도 2,700만달러를 수출키로 이미 계약을 마쳤다.
17일 지식경제부와 업계에 따르면 직원 88명의 주물업체 진흥주물(사장 이상덕ㆍ인천시 서구 경서동)은 올해부터 미군의 특수 방탄 장갑차인 엠랩의 샤시 핵심 부품인 차동 기어박스를 독자 개발, 이를 미국 오시코시사를 통해 수출하고 있다.
엠랩은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반군과 탈레반의 사제 폭발물 및 지뢰에 의한 사상자가 속출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특수차량. 방탄유리와 두꺼운 강판에, 폭발력을 분산토록 차량 바닥을 V자로 만든데다 사제폭발물의 원격조종 주파수를 방해할 수 있는 전파발생기까지 갖춘 첨단 차량이다.
미군은 지난해만 110억달러의 예산을 들여 이 차량을 7,700여대나 추가 도입했고, 우리 국방부도 최근 아프간 파병 예산으로 440억원을 편성하며 미군의 엠랩 10여대를 임대(대당 10억원)키로 한 바 있다.
이러한 차량에 진흥주물이 납품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업체의 제품이 일반 주물품에 비해 강도가 4배 이상 높아 폭발에도 잘 견뎌내기 때문이다.
오랜 노하우와 독자기술 개발 등을 통해 웬만한 폭발엔 꿈쩍도 안 하는 강도와 인성의 주물품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 설사 폭발물에 의해 일부 부품이 손상을 입어도 기어축과 서스펜션 등이 바퀴마다 따로 구동토록 설계됨으로써, 최소한 차량이 꼼짝 못하게 되는 일은 없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특히 세계적인 주물업체들을 제치고 진흥주물이 납품권을 따 낼 수 있었던 데에는 'e-매뉴팩처'(e-manufacture)라는 생산공정 혁신으로 빠른 납품이 가능했던 것도 한 몫 했다. e-매뉴팩처란 컴퓨터와 정보기술(IT)을 활용해 도면검토와 방안설계 등을 최적화한 뒤 시제품을 시행착오 없이 곧바로 양산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
이런 공정혁신으로 통상 6개월 이상 걸렸던 제품 주문에서 납품까지 기간을 진흥주물은 단 2개월만에 끝낼 수 있었다. 24시간 사제 폭발물 및 지뢰와 목숨을 내 놓고 싸워야 하는 미군으로서는 진흥주물에 높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었던 셈이다.
불량률이 1.7%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도 빼 놓을 수 없다. 통상 주물품의 불량률은 5% 안팎이다. 그러나 진흥주물은 통계학적 품질 관리와 내부 X레이 검사로 불량률을 크게 낮췄다.
이처럼 진흥주물이 '히든 챔피언'으로서의 역할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물업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그러나 진흥주물은 이러한 사회적 편견을 깨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김상준 부사장은 "주물업체는 지저분하고 위험하다는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 ACE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ACE란 자동화(Automatic), 청결화(Clean), 용이화(Easy)의 영문 앞 글자를 딴 것이다.
1971년 진흥주물제작소로 출발, 90년대 대우중공업의 하청업체였던 진흥주물은 이후 대우그룹이 해체되며 2003년 종업원지주제 회사로 독립한 뒤 기술연구소를 세우며 작지만 알찬 회사로 성장해 왔다. 2003년 13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액은 올해 330억원이 넘을 전망이다.
한편 진흥주물은 이러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17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생산기반기술 경기대회 시상식'에서 최고의 영예(대통령상)도 차지했다. 올해로 8회째를 맞는 생산기반기술 경기대회는 차세대 명장을 꿈꾸는 우수 기능인 발굴과 기술수준 향상을 위한 취지의 행사로 올해는 모두 568명이 참가, 4~9월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임채민 지식경제부 차관은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도 자동차와 디스플레이 등 우리 주력 산업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며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주조, 금형, 용접, 소성, 열처리, 표면처리 등 '뿌리 산업'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내년 상반기 중 '뿌리산업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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