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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동네한바퀴 더, 연남동엔 아줌마들이 만든 특별한 잡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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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동네한바퀴 더, 연남동엔 아줌마들이 만든 특별한 잡지가 있다

입력
2009.12.18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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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들이 무섭긴 무섭다.

제 사는 동네도 아니고 남의 동네를 이 잡듯 뒤지더니 동네 골목에 놓인 평상이 몇 개인지, 전설의 '도둑 잡는 빨간 내복 아줌마'는 실존 인물인지, 분식집 주인이 앙숙이기 십상인 핫도그집 아이를 '내 새끼' 라며 지극 정성 챙겨 주는 이유는 무엇인지 속속들이 밝혀 내더니 내친김에 잡지까지 발간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아줌마들이 직접 만든 동네 잡지 <동네 한 바퀴 더> (줌마네 출간ㆍ 무가지)다. 14일 서울 연남동 줌마네카페에서 만난 <동네 한 바퀴 더> 의 주역들은 막 출산을 마친 산부처럼 들뜨고 행복한 표정이었다.

박금옥(52)씨는 "동네 주민들에게 잡지를 가져갈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설렌다"고 했다. 배포 책임자인 이명희(39)씨는 "갓 태어난 우리 아기들이 박대 받지 않고 제대로 대접받을 곳에 보내야지 싶어 책임감이 크다"면서 얼굴 가득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이들은 글쓰기가 좋아서,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서 여성 문화 단체 줌마네(zoomanet.co.kr)의 글쓰기강좌 10기 회원으로 등록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기초 과정을 마친 뒤 "실습 삼아 동네 잡지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떠냐"는 이숙경 줌마네 대표의 한마디에 별 뜻 없이 "네, 해 볼게요" 한 것이 '즐거운 고생길'의 시작이었다.

9월 24일 첫 기획회의를 하고 줌마네카페가 있는 연남동이 자연스럽게 동네 잡지의 첫 번째 타자로 선정됐다. 글쓰기 교육을 받았다고는 하나 취재에서 사진 편집 디자인 영업 광고 배포까지 회원들이 직접 맡았으니 우여곡절은 다반사.

디자인을 맡은 박은위(41)씨는 "디자인 경력이라고는 10년 전에 매킨토시로 브로셔 하나 만들어 본 게 전부인데 그걸 하겠다고 나섰다가 머리 터져서 죽는 줄 알았다. 안 할 수도 없고 정말 땅 많이 쳤다"했다.

그러나 소득은 엄청 났다. 연희동 동교동 등 한국 정치사의 유력 지역들과 이웃하고 있지만 초등학교가 없어 아이들은 성산동으로 학교를 다니고 시장이 없어 노인들은 아침이면 손수레를 끌고 지하보도를 건너 연희동 시장을 다녀와야 하는 이곳에서 회원들은 변화무쌍한 디지털 세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아날로그의 감성, 서로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따뜻한 속내를 읽었다.

칠순을 넘긴 할머니가 갈 곳 없는 이웃을 위해 선뜻 방을 내준 사연에는 가슴이 뭉클해졌고, 오지랖이 넓다 보니 낯선 좀도둑마저 하도 따라다녀 결국은 '도둑 잡은 빨간 내복 아줌마'가 된 50대 주부 사연엔 폭소가 터졌다.

다세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형성된 꼬불꼬불한 골목길에는 누가 주인이랄 것도 없는 평상들이 놓여져 행인의 지친 다리에 짧은 안식을 주었고 아이들이 없어 조용한 데다 비교적 집세가 싼 덕에 주택 사이사이로 들어앉은 출판사, 작은 카페, 화교 중국집들은 아파트촌에서는 보기 어려운 고즈넉한 풍경을 선사했다. 출판을 준비하는 3개월은 연남동의 매력에 푹 빠진 기간이었다.

김소연(40)씨는"처음엔 사는 속내 드러내기를 싫어 외면하던 할머니들이 나중엔 골목 끝에서 눈만 마주쳐도 '어여 와 쉬었다 가라'며 평상 자리를 내줬다. 잡지를 만드는 게 갈수록 개인화하는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연결고리, 서로 마음을 열고 관계를 맺는 계기가 될 수도 있구나 싶어서 너무 좋았다"고 했다.

잡지 발간 소식이 알려지면서 곳곳에서 잡지를 보내 달라는 사람도 많다. 얼마 전에는 "연남동으로 이사 갈 사람인데 이사 갈 곳에 대해 알고 싶으니 미리 잡지 한 권 보내 줄 수 없겠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부산 지역에서는 "지역 잡지 만들고 싶은 데 도와 줄 수 있느냐"는 문의도 왔다. 여간 힘이 나는 게 아니다.

김혜진(36)씨는 "세상의 모든 동네마다 동네 잡지를 가질 수 있다면 이웃 간 정도 더 두터워질 것"이라며 "꼭 우리가 아니더라도 <동네 한 바퀴 더> 가 계속됐으면 좋겠다"며 맑게 웃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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